등록 : 2010.05.12 16:43
수정 : 2010.05.12 16:43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꿈은 의외로 쉽게 이뤄진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소속팀 ‘아침’의 일원이자 회사 직원이기도 한 권선욱씨, 언젠가의 일본 여행에서 옷 쇼핑 중 들었던 ‘토’(toe)라는 일본 밴드의 음악에 꽂힌 이래 내내 그들을 동경해왔다. 그래서 그에겐 꿈이 있었다. 한번 그들과 같은 무대에 서 봤으면 좋겠다는 꿈. 하지만 ‘토’는 일본 국내에서 음반 판매 차트에서도 수위를 차지하는 유명한 밴드이다. 아직 1집도 내지 못한 풋내기 밴드한테 이들과 같이 공연할 기회를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이스페이스가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싸이월드와 비슷한 것인데, 주로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자기 노래를 올려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걸 듣고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친구도 맺고 하는 세계적인 서비스다. 여기에 ‘토’의 페이지가 있었고, 권선욱은 거기에 글을 남겼다. “팬이에요. 한국에서 밴드 하고 있어요. 여기 와서 공연 한번 해주세요.” 그런데 냉큼 답이 왔다. 비행기 삯과 숙박만 책임져 주면 별도의 개런티 없이 한국 공연을 하고 싶다고.
물론 의외로 쉽다 해도 이 정도로 쉽게 이뤄질 리는 없다. 밴드 멤버에 매니저에 엔지니어까지 비행기 삯과 숙박료를 대주는 건 개인으로선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권선욱은 이제 회사를 끌고 들어가기로 한다. 심지어 자택까지 찾아가 개인용 컴퓨터에 음악 파일을 설치해주는 수고를 불사하면서까지 전 직원들에게 ‘토’의 노래를 전도하고, 그들의 우월성을 설파하기 시작한다. 대다수의 반응은 “무척 좋은 음악인데, 잘 팔릴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줄어들기만 하는 통장 잔고를 보며 한없이 움츠러들고 있던 상황인데다, ‘토’의 노래는 비록 경이로울 정도로 좋았지만 복잡한 리듬에 보컬도 거의 없는 노래들이었다. 하지만 “이거 좀 했으면 좋겠는데 제발”이라는 비굴함과 “이거 꼭 하고 말 거예요!”라는 결의를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던 권선욱의 눈빛을 보고 하지 말자고 단언할 수 있는 관계자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크게 삐칠 것 같아 보였다.
결국 꿈은 이뤄졌고, 내한 공연이 확정됐다. 일단 하기로 하자 일이 주체할 수 없이 늘어만 갔다. 공연만 주최하기로 했던 것이 음반까지 수입하려는 쪽으로 확장됐다. 그 결과 붕가붕가레코드는 첫 번째 수입 음반을 내게 됐다. 아예 일본 시장 진출을 도모해 보자는 얘기가 나와 ‘일본 사업 본부’를 만들고 권선욱을 본부장으로 앉혔다.
이런 식으로 붕가붕가레코드는 빨판상어처럼 누군가의 꿈에 붙어 한발짝씩 전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는 22일, 홍대의 한 클럽에서 ‘토’의 내한 공연이 열린다. 오프닝 게스트는 당연히 권선욱의 밴드 ‘아침’. 그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에 여러분도 함께했으면 좋겠지만, 표는 이미 모두 매진되었다.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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