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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31 19:47 수정 : 2010.03.31 19:47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제주도 사람들은 제주 이외의 지역을 ‘육지’라고 부른다. ‘섬 대 육지’라는 공간 인식에 근거한 것인데, 제주 출신으로서 나 역시도 떠나 산 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사고하는 방식은 여전하여 간간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육지 사람들 입맛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대학에서 농활 갔을 때, 아침 메뉴로 나왔던 냉국. 모름지기 냉국이라면 된장과 오이로 만드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했는데, 밥상에 올라온 냉국은 식초 베이스에 미역이 들어 있는 것. 당시 우리 농활대의 셰프는 고기가 없는 상황에서 카레를 만들 때는 일부러 카레를 살짝 덜 저어 고기 씹는 느낌이 나는 카레 덩어리들을 만들어낼 줄 아는 뛰어난 사람이었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원래 육지에서는 냉국을 식초로 만들어 먹는다는 사실을.

서울에서 처음 육개장을 시켜먹었을 때. 이번에는 그저 맵기만 할 뿐인 고사릿국이 나왔다. 그 식당이 후진 데라서 그렇구나 싶었는데 다른 곳에서 시켜먹었을 때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육개장에 돼지고기가 아닌 쇠고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다. 육개장이라 하면 고사리 특유의 풍미가 돼지비계의 배지근한 맛과 어우러지는 게 핵심일진대, 쇠고기를 넣으면 그저 밍밍할 뿐이잖아.

물론 육개장이 궁중요리에 기원을 둔 만큼 육지에서 해 먹는 방식이 원조가 맞는 것 같다. 진작 눈치를 챌 수도 있었다. ‘육개장’이라는 이름의 사발면은 제주에서도 팔고 있었고, 그 껍데기에 있는 사진에는 쇠고기가 떡하니 박혀 있던 것이다. 전통도 대세도 모두 쇠고기의 편이다. 더군다나 나는 돼지고기라면 맥락 안 따지고 환장하는 사람. 이런 취향을 아는 이들은 육개장에 돼지고기를 넣는다고 주장하면 이건 설렁탕도 돼지고기로 끓여먹을 기세라며 조소를 날린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 먹었다고 해서, 혹은 다들 그렇게 해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조리법이 우월하다고는 볼 수 없는 노릇, 몇 차례 입증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식초냉국이 밥상에 올라왔던 농활의 다음날 아침에 만들어 봤던 된장냉국은 대체 뭔가 싶은 맛이었다. 육개장에 돼지고기를 넣었을 때는 비린내가 진동하는… 음. 훗날, 어머니를 통해 된장냉국을 위해서는 특수하게 조합된 양념된장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은 육개장이 맛있는 까닭은 제주도 돼지고기가 육지의 그것에 비해 질이 좋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결국 관건은 제대로 된 조리법과 질 좋은 재료. 언젠가는 이것들을 갖춰 그들에게 된장냉국과 돼지고기 넣은 육개장을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무시당했던 것에 대한 억하심정과 맛난 걸 먹여주고 싶은 박애심이 묘하게 섞인 그런 심정으로. 하지만 그저 마음만 먹었을 뿐, 벌써 몇 년째다.

붕가붕가레코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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