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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3 19:26 수정 : 2010.03.03 19:26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정도가 꽤 심한 음치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인디계의 한창 떠오르는 샛별인 듀오 ‘옥상달빛’의 멤버로부터 자기네 음반 쇼케이스에 게스트로 와 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을 때 공연을 손님으로 보러 오라는 얘기로 알아들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설마 노래를 부르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일주일 후에 공개된 공연 포스터에는, 맙소사, 절창의 소유자인 강산에님 옆에 떡하니 출연 게스트로 ‘곰사장’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다. 게스트가 ‘관객으로서의 게스트’가 아니라 ‘출연자로서의 게스트’였던 것이다.

포스터도 뿌려져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상황, 평소 공짜라면 환장하여 야수처럼 달려드는 본성으로 인해 냉큼 승낙을 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녀들 역시 자타 공인의 음치에게 노래를 시킬 만큼 무모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터, 결국 나는 노래는 전혀 하지 않고 말만 하는 게스트가 되었다. 백여 명의 사람들이 꽉 들어찬 공연장에서, ‘인디 음악 마케팅의 이해’라는 주제로.

이거라면 익숙한 주제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 이래 이런저런 인터뷰를 해 오면서 들어왔던 질문이 이런 종류였으니. 성공했다는데 비결이 뭐냐, 뭘 잘하는 것이냐, 전략을 잘 짜냐, 마케팅을 잘하냐. 따라서 이럴 때의 대답도 대충 정해져 있다. 소속팀 하나가 성공했고 그나마도 운이 따라준 것이다. 그나마 남다른 게 있다면, 일을 벌이면서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정도. 덕분에 하는 일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고, 잘 안돼도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도 이런 얘기를 했다. 자학하는 느낌을 곁들였다. 관객들이 좋아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다. 선방했다 싶었다.

일주일 뒤 어느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기자도 비슷한 걸 물어봤고, 예의 패턴대로 대답을 했다. 그런데 기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사실은 뭔가 열심히 했는데 일부러 안 한 척하는 거 아니냐며, 공부 잘하는 애가 자기는 공부 안 했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찔끔했다. 모자란 척하여 겸손하게 보이려고 가식적으로 구는 게 아닌가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은 무난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결국엔 재수 없게 징징대는 꼬락서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밴드를 다룬 <벡>이란 만화에 나오는 가와쿠보라는 사람이 딱 내가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이 바닥에는 자기가 한 일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걸 내 신조로 삼기로 했다. 그런데 과대평가를 하지 않는 것과 자기를 깎아내리는 건 분명 다른 것 같다. 스스로를 긍정하는 것 역시 일을 계속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만 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꽤 잘하고 있다고 해서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게 대통령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청와대처럼 꼴 보기 싫은 건 아닐 테니까.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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