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1.27 20:22
수정 : 2010.01.31 13:16
[매거진 esc] 곰사장의 망해도 어쩔 수 없다
소녀시대의 새 음반이 나온다. 포털 사이트에 30초짜리 티저 영상을 공개했더니만 접속자가 폭주해 서버가 다운되고 말았단다. 한국 남성들의 욕망, 아니, 걸그룹의 힘이 대단함을 입증하는 사례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음악계에서 2009년은 걸그룹의 해라고 입을 맞추는 판국이다. 개인적으로도 동의한다. 작년 이맘때, 소녀시대의 ‘지’(Gee)를 처음 본 이후 1년 동안은 ‘잠 깰 때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 자기 전엔 카라’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때 전람회를 마지막으로 제대로 들은 적이 없던 가요 종류를 15년 만에 찾아 듣게 되었으니, 나름대로는 취향의 격변이었다.
이런 상황인 터라 만나는 사람들마다 걸그룹 칭찬을 잔뜩 했고, 그랬더니만 아예 너네 회사에서도 걸그룹 만들어보지 그러냐고 한다. 그런 생각이라면 이미 회사를 차릴 때부터 하고 있었다. 귀여운 여자애들에게 직접 코디한 의상을 입혀 무대 위에 올려 보내는 게 바로 연예기획사 남자 사장들의 전형적인 로망. 아무리 계통 다른 인디 쪽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고양이 귀와 장갑이라는 자기의 취향을 올곧게 밀어붙인 티아라 소속사 사장이 조금쯤은 부러운 게 사실이다.
아이돌의 음악과 무대를 제대로 보고 듣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을 버리게 됐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되어 어릴 때부터 트레이닝 받으면서 사는 아이돌들을 보면 운동선수들 같아 보인다. 티브이에 나온 어린 친구들이 회사에서 짜 준 대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즐겁게 사는 것처럼 보이느라 애쓰는 걸 보면 그나마도 더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흔히 ‘기획사’라는 데서 일하는 사람들은 또 그걸 짜내느라 야근하고 상사한테 까이고, 투자해서 실패하면 어쩔까 전전긍긍하고 그러겠지?
진짜로 마음에 걸리는 건 이렇게 해서 성공한 다음에 얻는 것이다. 이 계통에서 돈을 벌면 자본의 더러운 승리로 생각하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샘플링이라 써놓고 표절이라고 읽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하고, 폭행에 뭐에 문제도 많다. 그런데 어느 업종이나 추저분하게 일하는 사람들 있지 않나. 왜 이 계통만 성공의 원인이 성형 기술의 승리라거나 기획사의 얄팍한 상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처분되어야 하나 싶다.
혹자는 아이돌을 앞세운 대형 기획사의 지배에 한국 대중음악계가 도탄에 빠져 있고 이를 구원할 십자군 구실을 해야 할 것이 인디 음악이라 주장하지만, 만약 인디 음악이 해야 할 일이 아이돌들과 싸우는 것이라면 나는 패배를 선언하겠다. 애초에 겪어 온 아수라장의 숫자가 다르다. 오히려 애처롭다. 최소한 직업인으로서의 대접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사실은 쥐가 고양이 걱정해주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꼴에 동업자라고 기묘한 동병상련이 있는 것이다. 돈 못 벌어서 정도는 덜하지만, 딴따라라 하대하는 것, 어쨌든 인디 음악도 받고 있는 취급이거든.
붕가붕가레코드 사장
[화보 : 연예인-엄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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