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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2 16:42 수정 : 2010.05.12 16:42

[매거진 esc] 책에서 배우는 위로의 기술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는 음식과 관련해 흥미로운 장면들이 있다. 초상류계급의 남자 훈(이정재)이 와인을 마시는 숱한 장면들. 와인을 마실 때, 잔을 흔들고 입안 가득 와인을 머금고 후루룩 씁씁 혀를 굴려가며 요란하게 향과 맛을 빨아들인다. 영화적 설정이 아니고 와인을 ‘배울’ 때 누구나 그렇게 배운다. 디캔터에 따라 와인을 ‘열어’ 마시기도 하고.

하지만 잘난 남자 훈은 임신한 아내 몰래 하녀(전도연)의 방에 숨어들 땐 병나발을 불고, 디캔터에 따르고 남은 와인은 나이 든 하녀(윤여정)의 몫이 되어 흥얼흥얼 마취 단계에 이르곤 한다. 와인 마시는 장면만으로 계급을, 허영을, 우울을, 욕망을 드러낸다.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식사 장면만으로 가족관계가 원만한지, 집안 수준이 어떤지, 식구들 성격이 어떤지를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에서 20여년을 산 러시아 번역가 옐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쓴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는 “음식 메뉴는 한알 한알 정성으로 돌리는 묵주와도 같고, 돈 조반니의 여인들이 기록된 명부와도 같다”는 이탈리아 식문화 체험기다. 지역색 뚜렷한 이탈리아 요리에 얽힌 사연과 더불어 입에 침이 고이게 하는 사진, 이탈리아 조리 방식 해설이 곁들여졌다. 식문화를 말하는 것만으로 역사, 계급, 경제, 취향의 문제가 술술 딸려나온다. ‘esc’ 지면을 장식했던 (자칭) ‘요리계의 김구라’ 박찬일 셰프가 이 책을 감수했다는 사실은 소리내 읽는 것만으로 이탈리아 가곡 가사 같은 이탈리아어 요리명을 라틴어 기도문처럼 불신 없이 믿게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외국어의 말맛을 입에서 후루룩 씁씁 맛보는 즐거움을 느끼며 “무스티카, 카포나타, 파스타 콘 리 스파라콘치, 판차넬라” 하고 요리 이름을 소리내 읽는다. 요리가 아니라 메뉴 이름을 즐기는 꼴이 어쩐지 윤여정이 연기한 나이 든 하녀를 빼닮았지만…. 자본 따라 취향 가는 게 아니더라. 그러니 와이 낫?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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