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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3 19:25 수정 : 2010.03.03 19:25

[매거진 esc] 책에서 배우는 위로의 기술

우스갯소리 하나. 봉천동 사는 사람에게 “어느 동네 살아요?” 하고 물으면 “서울대 입구역 근처예요”라고 대답한다는. 청룡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내가 살았던 봉천4동은, 그렇다. 서울대 입구역 근처였다. 대학에 들어가 압구정동이나 성북동이 지구의 끝인 줄 아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우리 동네’가 나름 브랜드 파워가 있는 곳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만 그렇게 말한 줄 알았더니.

10년 넘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현 주거지 영등포구에 ‘대한민국의 신개념 스타일 랜드마크’를 자처하는 쇼핑몰이 들어섰다. 그곳 옥상 정원에 가면 직원용 흡연구역이 있는데, 그 위치에서는 영등포의 옛 시가 전경이 보인다. 막살이집이니 구멍가게니 하는 것들이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서 있다. ‘직원용’이라고 써 붙여 ‘고객’들의 눈에서 보호하고 싶은 광경의 실체. 반쯤은 숨기고 표현을 거르지 않으면 자존심 상하는 ‘우리 동네’.

<가난한 이의 살림집>은 빈민과 서민이 살고 죽은 거주 공간과 그에 얽힌 사연을 적은 책이다. 발품을 팔아 얻은 사진과 글은 시민아파트부터 여인숙까지를 괴롭도록 다시 떠올리게 한다. “도시의 막살이 형태는 토막집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현동·신당동(중략), 마포산 일대 그리고 노량진, 영등포동 등 당시 서울의 변두리에 걸쳐 다리 밑이나 하천변, 성벽 옆, 언덕 밑, 임야 등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가운데 뚝방집으로 불리었던 막살이집이 산동네 막살이촌 사람들보다 더한 천시를 받았던 것은 들을수록 별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뚝방집 자식이라며 놀림을 받았던 것인데, 이런 놀림이 싫어 초등학교를 채 마치지 못한 학령기 아동들이 제법 많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건 없다. ‘우리 동네’를 부연설명할 미사여구 개발에 고심한다. 찌질하지만 어쩌겠나. 여기 사는 건 ‘우리’가 아니라 ‘나’인걸. 내가 영등포 산다고 누가 그래. ‘대한민국의 신개념 스타일 랜드마크’에서 십분 거리래두.

이다혜/<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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