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지 일대를 정비해 만든 공원에 2000년 7월 세워진 중국인 강제연행 희생자 추모 동상. 밑에 영어·일본어·중국어로 쓰인 설명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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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비 세운 명단에 일 유력자 ‘줄줄이’
전쟁범죄 사죄하는 문안도 직설적
히가시카와정의 공동묘지 한편에 큰 석비가 있다. 정면에 ‘중국인 순난열사 위령비’라고 쓰여 있다. 태평양전쟁 기간 중 중국에서 이곳에 끌려와 강제사역을 하다가 숨진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시설이다. 순난은 국난으로 목숨을 바쳤다는 뜻이다.
일본 전역에서 조선인 강제연행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시설물을 찾아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있다고 해도 전후보상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나 재일동포 사회에서 세운 것이다. 관청이나 지역의 실력자들이 나서서 건립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가시카와정의 석비는 몇 가지 점에서 한국인 기자에게 대단히 놀랍게 비친다.
첫째, 비를 세운 주체인 ‘중국인 강제연행사건 순난위령비 건립실행위원회’의 구성이다. 면면을 보면 아사히카와시와 히가시카와정의 유력자들이 망라돼 있다. 시장, 정장, 지방의회 의장을 비롯해 상공회의소장, 농협조합장, 토지개량구 이사장, 노동단체 의장 등이 들어가 있다.
둘째, 비를 건립하게 된 설명문의 표현이다. 문장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이 사건은 일본 군국주의가 중국 침략의 일환으로서 행한 전쟁범죄이다. 구체적으로는 1942년 11월 내각 결정을 바탕으로 정부기관 및 군이 직접 지도하여 중국인을 일본 국내에 강제연행해 135개 사업소에 노역을 시키고 많은 중국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44년 이 땅에도 338명을 연행해… 단시일에 88명의 순난을 보았다.”
“우리들은 오늘 일본국의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무엇보다도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에서 사죄를 하고 순난열사의 혼을 애도하며 다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군국주의 부활을 저지하고 일-중 우호, 일-중 전쟁 재발방지를 구현할 것을 다짐하며 일·중 양 국민의 영원한 우의와 평화를 확립해 스스로의 증좌로서 이 비를 확립한다.”
비의 문안은 직설적이고 정곡을 찌른다. 중국인 강제연행이 전쟁범죄이고 마음속에서 사죄를 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저지한다고 다짐을 했다.
셋째, 비가 세워진 시점은 1972년 7월7일이다. 시기상으로는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총리가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거의 3개월 전이다. 일본 정부가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중 쇼크로 중국과의 국교 재개를 모색하면서 사전 정지작업을 한 느낌도 든다.
해마다 7월7일 공동묘지의 중국인 희생자 석비 앞에서 중국인 추모제가 열린다. 이날은 중일전쟁 발발일이다. 곤도 노부오 ‘캐는 모임’의 회장은 이 추모제가 중국인뿐 아니라 조선인을 추도하는 행사로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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