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같은 2009 스포츠계 총결산
스포츠는 한 편의 드라마고 영화다. 올해도 지구촌 곳곳의 경기장 안팎에서 극적인 대본과 시나리오가 쓰여지고 연출됐다. 올 한 해 스포츠를 드라마나 영화 제목으로 결산해본다.
주연 김연아, 주연이고픈 조연 심판들
작품성 ★★★★☆ 흥행성 ★★★★★ 빙판 위에 홀로 서 있지만 꽉 차 보인다. 표정부터 손끝까지 김연아(19·고려대1)가 내뿜는 포스는, 이미 여왕의 그것이다. 2월 4대륙선수권대회부터 12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출전한 5개 대회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꿈의 200점대 고지도 두 차례나 밟았다. 가끔 심판들의 이상한 판정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게 옥에 티.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은 이미 김연아의 몫이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작품성 ★★★ 흥행성 ★★★ 여기저기서 용이 꿈틀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볼턴에 진출한 ‘블루 드래건’ 이청용은 3골을 터뜨리는 등 짧은 시간에 팀 주축선수로 우뚝 섰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숨죽인 가운데 이룬 성과였다. FC서울에서 쌍용체제를 이뤘던 기성용 또한 스코틀랜드 셀틱과 계약하며 내년 시즌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프로야구에도 용틀임은 있었다. 막판 밀어주기 시비가 있었으나 엘지 박용택은 2002년 데뷔 이후 처음 타격왕에 올랐다. 두산 투수 이용찬은 공동 구원왕에 올라 정규리그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동주연 서희경 유소연
작품성 ★★★☆ 흥행성 ★★★★
신지애도, 최나연도 떠나버린 국내 여자 골프계를 서희경(23·하이트)과 유소연(19·하이마트)이 양분했다. 둘은 마지막 대회까지 <피도 눈물도 없이> 다승왕, 상금왕을 다퉜다. 최후 승자는 시즌 5승과 함께 총상금 6억6375만9286원을 벌어들인 서희경. 2인자에 머문 유소연은 시즌 4승과 5억9785만6500원을 챙겼다. 승수나 상금이나 간발의 차이였다. 유소연은 일찍 찾아온 2010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개막전에서 서희경에 역전승을 거두면서 <추격자> 개봉박두를 알렸다. 김약국네 아들들
감독 김인식
작품성 ★★★★ 흥행성 ★★★★☆ 재활선수의 재기에 탁월했던 ‘김약국네’ 김인식 감독. 흥행(성적)이 보장된 특급 배우 박찬호, 이승엽, 김동주 없이도 3월 열린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의 신화를 썼다. 비록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본에 졌지만, 국가대표 세대교체와 함께 ‘위대한 도전’을 완수했다. 마지막에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 임창용(야쿠르트 스왈로스) 단독 주연의 <타짜>도 절찬리에 상영됐다. 비록 흥행은 아주 저조했고 주연 배우는 입국장에서마저 고개를 떨궜지만 말이다. 오발탄
주연 타이거우즈, 조연 글래머 백인 여성 다수
작품성 ☆ 흥행성 ★★★★★ 우즈가 낮에 친 골프공은 대부분 그린 위로 떨어졌다. 적중률 80~90%. 그러나 그가 밤에 쏜 ‘샷’은 빗나가기 일쑤였다는 게 온천하에 드러났다. ‘골프황제’가 ‘밤의 황제’로 전락하는 것도 한 순간. <아이리스>의 엔에스에스(NSS) 멤버들이 수사를 해도 완벽하게 캐낼 수 없는 게 우즈의 내연녀 수였다. 급기야 우즈는 “골프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미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출연이 확정됐다. 대중 연예잡지 등에 그의 은밀했던 사생활이 모두 보도되니 흥행만은 남부러울 것 없었다.
감독 조범현, 주연 김상현 외
작품성 ★★★★ 흥행성 ★★★★★ 야구 명문 기아 타이거즈는 1997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발톱 빠진 호랑이마냥 힘을 잃었다. 하지만 올해 조범현 감독의 지휘 아래 날카로운 이빨을 되찾았다. 서울(LG)에서 다시 입양해온 김상현이 홈런·타점을 쓸어담으며 1등 공신이 됐다. 나지완, 안치홍 등 깜짝 스타들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실력행사를 했다. 기아의 돌풍 속에 프로야구도 <300>을 비웃으며 <600(만명)>을 찍었다. 역대 최고 흥행 신기록. 국외에서도 전통의 명가 뉴욕 양키스(미국)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일본)가 <라스트 맨 스탠딩>을 연출했다. 우리는 이제 남아공으로 간다
공동감독 허정무 김정훈 작품성 ★★★★ 흥행성 ★★★★ 태극전사에게 패배란 없었다. 허정무호는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4승4무의 성적으로 20년 만에 처음 무패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땄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7회 연속 본선 진출. 아시아에선 최초의 기록이다. 김정훈 감독이 이끈 북한 또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는다. 북한의 본선행에는 이란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슛이 도움이 됐다. 그렇게 남북 합작 드라마 <다 함께 차!차!차!>가 완성됐다. 국외에서는 티에리 앙리(프랑스) 주연의 <크레이지 핸드>(부제: 신의 손)가 유럽을 강타했다. 아일랜드는 강하게 상영 거부를 외쳤지만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부제:돈을 받고 튀어라)
감독 파리아스
작품성 ★★ 흥행성 ★☆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 깨끗한 축구의 기치를 담은 ‘스틸러스웨이’ 방식으로 컵대회는 물론 국내 클럽팀으로는 3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까지 팀을 이끌었다. 2009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3위의 업적도 세웠다. 모두가 찬사를 늘어놓을 무렵, 대반전이 일어났다. 포항에는 1년 안식년을 달라고 해놓고 뒤로는 사우디 축구 클럽과 계약했다. 파리아스는 정녕 김중배(사우디 알알리)의 다이아몬드(250만달러의 연봉) 때문에 이수일(포항)의 순정을 버린 심순애였던가. 왕의 귀환
주연 이동국, 감독 최강희
작품성 ★★★★☆ 흥행성 ★★★ ‘라이언 킹’(사자왕)일 때, 그는 사랑과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하지만 봄날은 짧았다. 이름값을 못한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대표팀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올해 정규리그 27경기에 출전해 20골을 넣었다. K리그 득점왕은 물론 최우수선수, 베스트11, 팬들이 뽑은 최우수선수 등을 휩쓸었다. 강한 조련으로 이동국에게 ‘사자후’를 되찾아준 최강희 감독의 전북은 창단 15년 만에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계 ‘라이언 킹’은 살아났지만, 야구계 ‘라이언 킹’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은 부진해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아시아 뚫고 하이킥
공동주연 양용은 신지애 추신수
작품성 ★★★★ 흥행성 ★★★ 그들에게 ‘아시아’란 지붕은 좁았다. 아시아의 하늘을 뚫고 세계로 뻗어갔다.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그것도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우승했다. 아시아 남자 선수 최초의 쾌거. 신지애(23·미래에셋)는 ‘올해의 선수’는 1점 차이로 놓쳤으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상금왕, 다승왕, 신인왕을 휩쓸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다이아몬드 그라운드 위에서는 추신수(클린블랜드 인디언스)가 아시아 선수 최초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의 신기원을 이뤘다. 양용은 골프가방과 추신수 방망이의 공통점은? 태극기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아내의 유혹’에 ‘망설이지 마’
작품성 ☆ 흥행성 ☆ 갈 곳 없이 방황하던 한 남자(이천수). 옛 스승(박항서 전남 감독)의 구원에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악동짓(심판에게 주먹감자 날리기 등)이 계속됐다. 급기야 숙소까지 무단이탈했고, 옛 소속팀(페예노르트)과의 계약서를 핑계로 사우디로 떠나버렸다. 출국 6개월 만에 들리는 소식은 사우디 클럽(알 나스르)에서조차 방출 위기에 놓여 있다는 것. 돈과 배신, 그리고 거짓말이 난무했던 이천수 주연의 막장 드라마의 끝은 어디일까. 이 밖에도 농구 스타 김승현(오리온스)은 이면계약 파동으로 시즌 18경기 출장정지 징계(이후 9경기로 줄어듦)를 받았다. 이상렬 배구 대표팀 코치는 박철우(현대캐피탈)를 폭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프로야구 롯데 정수근은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가 풀린 지 한 달도 안 돼 또다시 음주 문제를 일으키며 결국 유니폼을 벗었다. 출범 2년 만에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히어로즈는 지난해 장원삼에 이어 올해 이택근 등 적극적인 선수 세일즈에 나서 막장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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