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밤 도쿄 신주쿠구 중앙공원에서 열린 시민단체의 무료급식 행사에서 노숙자와 실직자들이 저녁식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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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나라 엇갈린 세밑풍경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세계 경제의 롤러코스터는 2009년의 끝에 선 지금도, 지구촌 일반인들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업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 좀체 소비의식이 살아나지 않는 디플레 속 일본의 한편엔, 세계에서 가장 빨리 회복세를 되찾은 중국의 소비광풍이라는 대조적인 모습이 있다. 특파원들이 보내온 미·일·중의 세밑 풍경이다. 일|안먹고 안쓰고 소비심리 ‘꽁꽁’ 도시락·전자제품 ‘가격 뚝뚝’ 닫힌 지갑 ‘묵묵부답’장기침체 여파…임금 떨어지고 실업률 높아가고 일본 도쿄의 도심 빌딩가가 밀집한 주오구 인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건만, 이가리시 도모미(32·여)의 좌판에는 아직도 팔다남은 도시락이 손님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500엔(약 6300원)에 파는 도시락을 12시반 이후에는 350엔까지 할인을 해도 팔리는 것은 하루 40~45개가 고작이다. 올해 들어 ‘시간 할인가격’을 390엔에서 350엔으로 더 내렸는데도 판매갯수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고객들이 인근 편의점에서 주먹밥 1~2개로 때우거나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주오구에서 3년 전쯤 길거리 도시락 판매회사는 4개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10개로 늘어났고요.” 연말 일본 사회의 디플레이션 상황을 더욱 실감케 하는 것은, 280엔(약 3500원)짜리 규동(쇠고기덧밥)집의 등장이다. 규동 체인 1위 업체인 스키야는 얼마 전 규동 보통 가격을 280엔으로 50엔 내렸다. 디플레이션이 한창이던 2001~2004년 가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청바지값 내리기 경쟁’도 끝이 없다. 올해초 990엔짜리 청바지를 시작으로 880엔, 850엔짜리에 이어 최근엔 690엔까지 나왔다. 내년엔 500엔짜리 동전 한닢으로 살 수 있는 ‘원코인 청바지’의 출현도 예상되고 있다. 영화·드라마 디브이디와 음악 시디 대여점인 츠타야에서는 이달 들어 990엔짜리 베스트앨범 시디를 내놓았다. 보통 2000엔대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내린 것이다. 비교적 고가의 전자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평면 티브이의 11월 평균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16% 하락했다. 무선인터넷 2년간 의무가입 조건으로 1엔 또는 100엔짜리 소형 노트북도 등장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완만한 디플레이션상황에 진입했다”고 공식선언했다.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 9개월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지난해 가을 이후 금융위기와 경기악화로 가격하락이 세계적인 현상이라지만,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유별나다. 식료품과 에너지가격을 제외한 종합 물가지수만을 놓고 보면 1998년 이후 계속해서 물가가 하락중이다. 사실상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10년 이상 ‘진행형’인 셈이다. 일본의 수요부족은 약 35조엔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를 보면 실제 수요와 잠재적인 공급력의 차이를 나타내는 ‘수요 갭’의 경우 일본이 7%로 미국과 유럽의 3~4%보다 훨씬 높다.
일본인의 소비부족은 무엇보다 급여가 오르지 않아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7~9월 노동자 임금총액은 전년동기 대비 3.8% 떨어져 1992년 수준의 저소득에 머물고 있다. 1998~2006년 장기 침체를 경험한 바 있는 일본 소비자 특유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한다. 저소득 시대에 디플레이션은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물가하락이 지속되면 기업수익과 임금은 더욱 축소돼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최근 엔고현상까지 겹쳐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지자 대기업들은 내년도 설비투자(28.2% 감축)와 신규채용(21.2% 감축)을 대폭 줄이는 등 긴축경영에 들어갔다. 조금 나아지는가 싶던 실업률도 11월 들어 5.2%로 4개월만에 악화됐다. 이런 디플레이션 장기화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하다. 지난 27일 밤 7시 도쿄 신주쿠구 중앙공원엔 한 시민단체가 마련한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500여명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직장을 잃고 인터넷카페를 전전하는 예비 노숙자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베이징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고객들이 연말 세일기간을 맞아 물건을 고르고 있다. 가격 인하를 알리는 표시들이 곳곳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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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백화점 북새통 “미쳤어.” 연말을 맞아 모임이나 약속 시간에 맞춰 차를 타고 베이징 시내 도로로 나간 사람들 입에선 짜증섞인 한숨이 번져나온다. 베이징 시내로 향하는 주요 도로는 주차장이 되다시피 했다. 중산층 증가와 정부의 자동차 구매자 세제혜택 제도에 힘입어 인구가 1700만명에 달하는 베이징의 등록 차량은 이달에 4백만대를 넘어섰다. 베이징에서만 하루 1000대 이상의 새 차가 팔린다. 5년 뒤 베이징의 등록 차량은 8백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시장 자리를 굳혔다.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따뜻한 차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창을 두드리며 부동산 광고지를 내미느라 바쁜 사람들이 도로에 줄지어 서 있다. 부동산값 급등으로 1㎡당 3만위안(약 520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며 산둥성 칭다오 바닷가에 별장을 사라는 전단지를 내미는 이들은 삭풍이 몰아치는 추위 속에 하루종일 전단지를 돌리고 하루 30위안(약 5200원) 정도를 받는다. 많은 자동차들은 연말 할인판매에 인파가 가득한 대형 상점이나 백화점으로 향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선물을 사느라 사람이 너무 많아 인기 의류는 입어보지도 못하게 한다고 불만이 많다. 신년 가족·친지 선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중국인들 사이에 올해 인기선물은 밥솥, 두유 제조기, 대형 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 내복 등이다. 올 한해 중국 정부의 구호는 ‘내수 확대’였다. 외부 의존도가 너무 큰 경제구조를 수술하기 위해 내수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소비가 미덕’임을 강조했다. 중국의 관영 <중앙티브이>(CCTV)는 28일 “올 중국 경제성장에 소비가 수출·투자를 제치고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런 세태 속에 부유층들의 ‘명품쇼핑’이 화제다. 최근 <광저우일보>엔 “중국 부자들은 명품을 일반인이 시장에서 야채를 사는 것처럼 구매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로버트 폴렛 구찌그룹 회장은 “올해 중국이 전세계 명품 소비의 4분의 1을 차지해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조사기관의 분석을 보면 중국 명품소비 인구는 이미 전체 인구의 13%인 1억6000만명에 달하며 대부분 25~50살의 화이트칼라, 사기업주 등이다. 광저우의 에르메스 매장에선 7만위안(약 1200만원)짜리 백금장식 가방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로 인기다. 베이징/글·사진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미|“난방비 아끼려” 실내외투 ‘불티’ 430만가구 가스 끊겨 지난 8월까지 신문사 편집자로 매일 아침 흰 와이셔츠를 입었던 버지니아주의 브라이언 브루하우스는 지금은 아침마다 갈색의 유피에스(UPS) 자켓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는 해직 뒤 경력 편집자를 뽑는 몇 군데 회사에 지원했으나 번번이 떨어졌다. 한 명을 뽑는 데 400명이 몰린 곳도 있고, 700명이 몰린 곳도 있었다. 그리고 이달부터 유피에스에서 파트타임으로 오후에 3시간씩 박스를 트럭에 옮겨싣고, 집으로 소포를 배달한다. 이렇게 해서 하루 30달러(약 3만5000원)를 번다. 연말 쇼핑시즌을 맞아 요즘 미국의 대도시 쇼핑센터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주차장에도 차 댈 곳을 찾기가 힘들다. 이달 들어 지난 24일까지 미국의 소매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3.6% 늘어났다. 그러나 실업자들의 힘겨운 삶은 연말이라고 비켜가지 않는다. 극한으로 몰린 실직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뱅크’를 찾기도 한다. 플로리다주 포트마이어의 한 푸드뱅크에서 일하는 레베카 브리슬레인은 <에이피>(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음식배달을 요구한 곳이 꽤 잘 사는 곳이어서 놀랐는데, 집안에 들어가보니 침대까지 모든 가구를 다 내다팔아 텅빈 바닥에 실직자 부부와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미 농림부는 현재 4900만명의 미국인들이 영양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이 조사를 시작한 1995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올 겨울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제품은 실내보온용 외투인 10달러짜리 ‘스너기’(snuggie)였다. 마치 중세 수도승의 옷처럼 생긴 스너기는 난방비가 무서워 집안에서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하는 미국인들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실제로 전미 에너지지원 담당자 협회의 통계를 보면, 2009 회계연도에 미국에서 약 430만가구가 요금을 못내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끊겼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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