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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9 20:46 수정 : 2009.12.30 08:21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규현 신부 등 오체투지 순례단이 지난 6월6일 경기 파주 임진각에 도착하고 있다.

반대여론에도 4대강 강행
‘16개 보’ 대운하 논란 계속

유달리 일도 탈도 많았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경제위기에다 현 정권의 독선과 아집이 겹치며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떠나고 고통받았다. 길어진 불황, 갇히는 물길, 연이은 상실, 차단된 광장은 2009년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이 네 가지 열쇳말로 올 한해를 돌아봤다.

물길도 노동자도 거슬러 ‘민심 불황’

■ 물길

반대여론에도 4대강 강행
‘16개 보’ 대운하 논란 계속

‘4대강 살리기’는 한반도 대운하의 변칙 추진이란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각종 조사에서 나타난 부정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고집스럽게 4대강에 매달렸다. 사업은 일사천리로 집행됐다. 지난 4월 ‘4대강 마스터플랜’이 발표되기 무섭게 환경영향평가가 끝났다. 넉달만이다. 공사는 11월에 시작됐다. 22조원이 들어가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지만, 준비기간은 6개월에 불과했다.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 등은 지난 6월까지 124일 동안 지리산 노고단에서 경기도 임진각까지 400여킬로미터를 오체투지로 기면서 강물에 사죄를 구했다. 시민 1만명은 11월 정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회피하고 환경·문화재를 부실하게 조사하는 등 법을 어겼다며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4대강 살리기의 사업 목적은 기존 대운하의 ‘화물 운송’에서 ‘홍수 방지’로 바뀌었지만, 내용은 그대로다. 낙동강 8개, 한강 3개 등 16개의 보가 세워진다. 대부분의 보는 가동보로 설계된다. 지속적으로 강바닥을 파내, 낙동강의 경우 수심 4~6미터가 유지된다. 5000톤급의 배가 다닐 수 있는 깊이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극명한 시각차는 물길을 보는 철학의 차이다. 정부는 물을 모아야 물이 맑아진다고 했고, 반대하는 이들은 물을 가두면 강이 죽는다고 했다. 이는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자연스러워야 할 물길을 깊게 파고 단순화하는 게 옳은가’, ‘대운하를 포기하겠다는 이전의 약속은 기만이었나’하는, 세간의 의구심을 정부는 말끔히 풀어주지 못했다.

■ 불황

비정규직 임금 7.3%줄고
쌍용차 974명 길거리로

파업중이던 쌍용자동차 노조원과 가족이 지난 6월 경기 평택시 칠괴동에 있는 회사 앞에 경찰 투입에 대비해 쌓아 놓은 컨테이너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 국제 금융위기로 시작된 불황의 여파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기업들은 임금 동결과 비용 절감, 인력 감축을 서둘렀고, 실업자는 한때 100만명에 근접했다.

쌍용차가 총 인원의 36%인 2646명을 줄이는 인력감축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쌍용차 노조는 원래 온건한 성향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불쑥 날아든 해고통지서는 이들을 ‘투사’로 만들었다. 파업은 77일간 계속됐다. 벼랑 끝에서 노사 합의가 이뤄졌고, 마지막 남은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8월6일 도장공장에서 나왔다. 노조는 정리해고를 수용했고 결과적으로 974명이 회사를 떠났다. 지난 17일 법원이 ‘회생 계획안’을 강제 인가하면서 쌍용차는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진 인터넷 경제논객 박대성(31)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1월 검찰에 체포·구속됐다. 검찰의 공소장은 불황과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비판한 그의 글들로 채워졌다. 세계 주요 언론은 한국 정부의 ‘오버’를 비웃었고, 1심 법원은 4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올해 성장은 플러스를 기록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엔 그늘이 여전하다. 위기 해소의 과실은 대부분 대기업과 자산가들에게 뿌려진 반면, 희망근로 등에 나선 서민들에겐 푼돈이 돌아갔을 뿐이다.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은 월평균 120만2천원이었다. 지난해보다 7.3% 감소한 수치다.

‘임’은 떠나고 광장 닫히고 ‘민주 상실’

■ 상실

해 넘기는 ‘용산참사’ 눈물
김수환·노무현·DJ 큰별 져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들이 지난 5월24일 갑자기 쏟아진 폭우를 맞으며 꽃을 든 채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유달리 큰 인물들이 많이 타계했다.

새해 벽두부터 서울 도심 한복판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농성하던 철거민들이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경찰은 신새벽 강제 진압작전에 나섰고, 결국 화염병 등 인화물질이 가득한 망루 3층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망루 안팎에서 대치하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함께 불길에 휩싸여 숨졌다. 검찰은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경찰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정부는 단 한 차례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유족들은 그런 정부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장례식을 미루고 있다. 이들이 스러져간 용산 남일당 건물은 2009년 한국의 현실을 표상하는 공간으로 남았다.

5월23일 토요일 늦은 아침, 텔레비전엔 ‘노무현 전 대통령 건강 이상설’, ‘병원 이송 중’이라는 속보 자막이 흘렀다. ‘설’로 시작된 속보는 이내 사실로 확인됐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해 한 차례 검찰 조사(4월30일)를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은 14줄 분량의 짤막한 유서를 남긴 채 뒷산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 뙤약볕 아래 그의 장례가 치러진 엿새 동안 그 산골 오지에는 무려 100만명이 찾아가 애도의 마음을 보탰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누구보다 슬퍼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석달 뒤, 8월18일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 세력의 버팀목이 돼주었던 김수환 추기경도 그보다 앞서 2월16일 유명을 달리했다.

■ 광장

자발적 추모인파엔 차단벽
관 홍보 행사만 ‘광장 가득’

지난 5월 31일 오후 차벽에 가로막힌 서울광장은 인적이 끊긴 ‘닫힌’ 광장이 돼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수도 서울에 광장을 만든 첫 인물이자, 그 광장을 닫아 건 첫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시민들에게 돌려준 시청 앞 광장(서울광장)은 그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역설적으로 차단과 봉쇄의 공간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서울광장으로 모여들었다. 경찰은 버스를 앞뒤로 붙인 기이한 벽을 쌓아 광장 출입을 막았다. 밀려난 시민들은 손에 손에 국화꽃을 들고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5월29일 치러진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는 수백만의 인파가 모여들어 마지막 가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7월에는 대한민국의 중심도로인 서울 세종로 한복판에 광화문 광장이 완성됐다. 시정을 홍보하는 설치물과 인위적으로 조성·관리되는 꽃밭, 매주 열리는 이벤트성 행사가 광장을 차지했다.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란 조소까지 나왔다. 그 광장의 북쪽 끝, 광화문 바로 앞에선 ‘스노보드 월드컵’ 대회까지 치러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도시 마케팅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렇듯 올해 대한민국의 광장은 민주주의를 제한하고 축소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시민들이 스스로 모이고 만들어가는 서구 선진국의 광장과 달리, 우리네 광장은 날마다 홍보성 행사로 채워졌다. 광장이란 이름이 민망하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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