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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8 08:12 수정 : 2009.12.29 13:39

2009년을 달군 방송의 조력자들
‘환상 랩드립’ 정웅인, ‘막장 찌질남’ 변우민
예능·코미디에선 박성호·붐 ‘웃음의 2인자’
보조 프로그램 자처 ‘라디오 스타’도 눈길

우리는 그들을 “조력자, 2인자, 쩌리(겉절이)”라 부른다. 2009년을 고현정의 해로 만들기 위해, 점 찍고 돌아온 아내와 ‘발과 학춤’으로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비워냈다. 유재석·강호동의 옆에서, <개그콘서트>의 무대 뒤에서 무너지고 자학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그들의 드라마는 ‘국민’ 타이틀을 얻고, 그들의 코미디는 인터넷을 달궜다.

누구더라…. 미생, 칠숙, 정교빈, 서민정, 화진, 송우빈?

미생, 칠숙, 교빈, 민정, 화진, 우빈. 이 가운데 두 사람 이상 안다면 그 사람은 방송업계 종사자, 아니면 방송계 소식을 전달하는 열혈 블로거다. <너는 내 운명>, <선덕여왕>, <아내의 유혹>, <꽃보다 남자> 등 올 한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지켰던 드라마들의 조연급 배역 이름이다.

<선덕여왕>에서 정웅인이 연기한 미생의 경우 귀고리, 반지 등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선덕…>의 (드러나지 않은) ‘옴 파탈’로 불렸다. 특히 랩을 방불케 하는 대사 구사력은 인터넷상에서 ‘환상의 랩드립’이라고도 불리며 발음교정조차 안 된 신인배우들을 주눅들게 만들었고, 전회 출연이란 또다른 기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칠숙의 안길강, 염종의 엄효섭 또한 특유의 카리스마로 덕만, 미실, 비담, 유신, 춘추 등에 이르는 주요 배역들과 경쟁하고 굴복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 배역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조력자들은 2009년의 또다른 화두인 ‘막장’에서도 빛났다. 올해 초 <너는 내 운명>에서 시어머니 서민정을 연기한 중견배우 양금석은 이른바 ‘시모·친모 쌍끌이 백혈병’ 설정이라는 벼랑 끝에 섰다. 언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력은 시청자들의 성난 눈길에서 드라마를 구해냈다.

같은 의미에서 <아내의 유혹>의 찌질남 정교빈을 연기한 변우민은 ‘저 인간이라면 점이 아니라 때만 안 밀어도 못 알아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억지 ‘점’ 설정을 순화시키는 ‘못난’ 연기로 드라마를 이끌었다.

궂은 역할만 보자면 올해의 정점에는 최수린이라는 낯선 이름의 배우가 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가장을 유혹해 남의 집을 파탄내는 악녀(<밥줘>)와 남편의 외도에 속을 끓이는 아내(<파트너>)로 동시에 등장해 저녁 8시와 밤 10시 두 번씩 전혀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지만 누구도 연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의 ‘궂은’ 활약은 <내 사랑 금지옥엽>의 못된 새엄마, <히어로>의 사라진 술집 사장 등으로 이어지면서 악역 전문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소리없이 스스로 빛난 조력자도 있었다. <꽃보다 남자>의 송우빈을 연기한 김준은 트렌디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카메라 욕심 없이 화면의 사각에서 꽃남 동료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로 더 도드라졌다. “전하라는데?” “그렇다는데?” 등의 회당 0.5마디에 불과한 ‘굵고 오만한’ 대사에 누리꾼들은 “대사를 늘려달라”는 항의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예능물 <천하무적 야구단>의 핵심 멤버(여기서도 주로 후보선수이니 역시 조력자)로도 활약한 그는 한류스타로 거론된다.


예능에서 ‘어색’으로 성공하기, 안전한 2인자-부담없이 즐기기

예능오락 프로그램에서 ‘줄서기’는 그 자체로 생존 전략. 유재석을 따르는 박명수의 2인자 전략이 대박을 낸 뒤, 너도 나도 ‘라인’을 만들고, 줄을 섰다.

이런 분위기에서 2009년 붐의 존재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강호동, 이승기가 진행하는 <강심장>이 빨리 자리를 잡은 데는 아이돌 그룹의 사생활 폭로보다 붐의 촌티나는 지드래곤 흉내가 더 결정적이었다. 폭로성 말잔치냐, 버라이어티 쇼냐를 결정짓는 순간에, 표절 논란 속에 심드렁한 지드래곤을 예능에서 춤추게 한 것은 바로 붐이었다.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뉴규송이나 <스타킹>의 몸을 사리지 않는 상황 설정은 올해 최고 무관의 제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관의 조력자라는 타이틀 앞에 또하나의 독보적인 인물은 신정환. 1인자 자리를 탐내지 않는 듯하면서도 주 진행자를 면박주고, 게스트와는 소통불가인 진행자로서 자리를 잡았다. 불가해한 캐릭터로 유력한 조력자 자리를 차지한 예능인이라면 단연 정형돈을 빼놓을 수 없다. 침묵, 어색함이 개그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그의 능력은 한걸음 더 나아갔다. 아예 대사 없이 성우의 대사에 따라 어색하게 연기하는 상황극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에 적용되면서 ‘빵’ 터진 것이다. 무명 아닌 무명의 세월을 보낸 정가은과 함께 <남녀탐구생활>의 주인공 두 사람은 1인자 자리를 넘보는 2010년 유망주다.

예능 쪽에는 1인자 노림수 없이 묵묵히 2인자를 자처하며 한 해를 보낸 부류가 유난히 많다. 스탠딩 코미디 부동의 1위인 <개그콘서트>가 수년간 정상을 유지하는 것은 조력자를 자처하는 개그맨들의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는 게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중에서도 박성호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보한 조력자라는 점에서 후배들에게 조력자 생존법을 전수하는 듯하다. 황현희가 남성 인권 운운하며 주먹질로 큰 웃음을 줄 때, 찌질하게 눈물 흘리는 역할로 뒤를 받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짧은 멘트로 극의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은 명품 조연 캐릭터의 전형이다. 이밖에도 <무릎팍 도사>를 뒷받침하는 건방진 도사 유세윤이나, <1박2일>에서 상황개그 설정을 도맡는 이수근은 둘 다 강호동을 도우며 언제든 1인자로 나설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줬다.

조력자를 자처하는 프로그램

드물게도 개인 아닌 프로그램 전체가 조력자를 자처하기도 한다. <라디오 스타>는 <무릎팍 도사>와 함께 <황금어장> 안에 편성돼, <무릎팍 도사>에 유명인사가 나오는 날이면 늘 5분 이내 방송을 하거나 아예 다음주로 연기되기도 한다. 끝날 때는 “다음주에 봐요, 제발”을 외친다.

그런 마이너 근성은 잊혀진 가수들에 대한 낭만을 불러오기도 한다. 봄여름가을겨울과 이승철의 보기 드문 합주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함께 가수 김현식을 회고하기도 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천하무적 토요일> 안의 두번째 코너로 편성됐다가 반응이 좋아 아예 프로그램 전체를 차지한 경우다. 여전히 전통강호 <무한도전> <스타킹>에 밀려 10%의 시청률도 쉽지 않지만 2010년 조력자 탈출을 노리는 수많은 겉절이·깍두기들에게 이들의 선전은 그만큼의 희망이기도 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사진 문화방송 한국방송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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