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21 08:38
수정 : 2009.12.29 11:56
|
대전환의 10년 이슬람
|
[열쇳말로 본 2000~2009]대전환의 10년 - 이슬람
문명충돌 넘어 미 패권 가늠할 사활적 양상
유럽도 갈등 폭발…보수화 흐름 타고 증폭
이슬람은 인류에게 무엇인가? 코란은 살만 루슈디의 표현처럼 ‘악마의 시’인가, 아니면 평화와 공생의 메시지인가? 십자군전쟁 이후 1000년 동안 이슬람이 이처럼 국제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2000년대 첫 10년간 이슬람과 비이슬람권의 전지구적 대결은 마치 11세기 말 유럽 기독교 국가들이 이슬람 정복 전쟁을 벌일 당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격렬했다. 두 문명의 대결의 끝은 어디일까?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역 테러, 2005년 영국 런던의 지하철 테러와 프랑스의 무슬림 폭동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사태는 모두 유럽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무슬림 2세들이 벌인 테러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스페인 테러로 191명이 숨졌고, 런던 테러로는 52명이 희생됐다. 이슬람 혐오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2004년 프랑스는 공립학교에서 무슬림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고, 2009년 말 스위스에선 이슬람 사원 첨탑 금지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슬람권 대 비이슬람권의 갈등은 문명충돌의 양상을 넘어 미국의 세계 패권 제패를 가늠하는 사활적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 출발점은 2001년 9·11테러였다. 이후 이슬람 문제는 지역분쟁 내지 종교갈등 성격을 넘어 문자 그대로 ‘글로벌 현안’이 됐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20세기를 ‘극단의 시대’ ‘폭력의 시대’로 규정한 것은, 적어도 무슬림들에겐 새천년의 10년 동안에도 유효했다.
유럽에선 급증하는 이슬람 인구와 세계 경제위기에 따른 극우·보수적 분위기가 무슬림을 궁지로 내몰았다. 그 배경엔 국경 없는 노동과 자본의 이동에 따른 무슬림들의 인구비 변동과 사회통합 실패가 깔려 있다. 2008년 말 현재 유럽의 무슬림은 5146만여명으로 유럽 전체 인구의 7%에 이르렀다. 유럽에서 태동하고 완성된 근대적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는 지금 무슬림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아랍권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해 안정적 지배 틀을 갖추겠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확대 중동 구상’(2004년)은 이슬람권의 민족의식과 반미정서를 자극하면서 이슬람 정치세력의 약진이라는 부작용만 양산했다. 2000년대 중반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가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고, 이란이 중동의 패권국가로 급부상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2000년 제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로 새천년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이르기까지 10년간 다윗과 골리앗의 무력충돌만 되풀이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2003년 합의한 중동평화 로드맵은 이라크 및 아프간 전쟁의 포연에 묻혔다.
북아프리카-중동-서아시아에 이르는 반미 이슬람 벨트는 크게 약화됐다. 리비아는 핵 개발을 포기하고 대미관계를 개선했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일찌감치 친미로 돌아섰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축출됐다. 지금은 사실상 이란만이 고립무원의 투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사회규범적 가치로는 ‘이슬람’을, 정치체제로는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이란 방식의 정치실험이 서구의 지배질서와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유럽 내 무슬림들이 백인 원주민들과 사회적으로 공생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 확대판일 수도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