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수용한 것은 ‘현재의 배고픔’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북한을 경제부국으로 만들겠다는 열망 때문이다. 미국 관료그룹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이 선호하는 ‘북한의 선 핵포기를 통한 비핵화’는 어렵다. 지난주에 북한-중국 국경 지역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늘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혹은 중국 국경수비대의 통제로 어려움을 겪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공직생활 기간을 빼면 거의 해마다 치르는 행사다. 처음에는 문헌이나 탈북자 증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북한 경제사정 파악에 대한 갈망으로 이 여정에 나섰다. 그렇지만 아무리 북한과 가까운 국경에 가도 그 외관만 관찰될 뿐 정작 속사정을 알기는 어려웠다.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답사를 다니며 북한 경제의 민낯을 보고자 시계열적으로 변화를 추적했다. 이 방법이 외부 관찰을 통해 북한 내부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관찰 20년 동안 북한의 국경 도시나 마을은 집 한 채 신축되는 것을 보기 어려울 만큼 낙후 상태에서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확 달라졌다. 2014년부터 국경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2015년에는 그 현상이 두드러졌다. 도처에서 공동주택, 공공기관 등의 신·개축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수송 차량이 증가했으며, 뙈기밭으로 누더기가 된 산들에 일부 조림이 시작되었다. 북한 경제의 성장을 증명하는 움직임이 다양하게 포착되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초고강도 대북제재가 발효된 작년에는 사정상 답사를 걸렀다. 그리고 올해 어느 때보다도 특별한 궁금증을 가지고 다시 국경 답사에 나섰다. 과연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모처럼 살아나던 북한 국경지방의 경제 활력을 얼마나 꺾어 놓았을까? 이미 한국은행이 2017년 북한의 실질 지디피(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3.5% 감소했다고 발표한 터였다. 결과는 거꾸로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북한 곳곳에서 2년 전보다도 더 활발하게 건설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압록강 상류의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수십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대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차역, 세관 등도 막 다시 지어졌다. 짐이나 광물을 실은 트럭과 택시 등이 쉼 없이 오갔으며, 만포-혜산 철도선에서 오랜만에 화물을 가득 실은 열차들을 볼 수 있었다. 공장 가동이 더 활발해졌고, 뙈기밭의 퇴화가 더 두드러졌으며, 조림지역도 크게 증가했다. 답사 23년 만에 처음으로 압록강 중상류에서 농지 보호를 위해 시멘트 제방을 쌓는 광경도 보았다. 이번 답사에서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띤 북한 경제를 목격했다.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무색해 보였다. 이 경제 활력이 현재 진행 중인 북-중 경협과도 크게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북한 관광이 활발해졌을 뿐, 무역업자들은 여전히 제재의 고통을 호소하고 북한식당에서조차 북한산 해산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재 전선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북한 경제의 활력은 내부의 자력적인 발전 동력을 통해 확보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을 다 알기는 어려워도 김정은 시대에 북-중 교역에서 수입 주력 품목이 기존의 광물유, 곡물 등에서 전기기기, 기계, 차량 및 부품 등으로 바뀌었는데, 그 결과가 경제적 확대재생산 기반을 갖추는 쪽으로 나타난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한국은행의 북한 지디피 통계는 북한 경제 활력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경제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초고강도 대북제재와 북한 경제의 활력 사이에 발생한 괴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제재가 북한 경제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지 못한다는 증거로서 제재 기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최대의 압박과 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가 한계에 도달하여 김정은이 마지못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이 제재를 지속하는 것이 분명 효과적이다. 그러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주민들이 하루 세끼를 굶지 않는다는 사실은 김정은이 당장의 경제적 난관을 회피하기 위해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이 아님을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수용한 것은 ‘현재의 배고픔’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재 해제를 통해 고도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여 북한을 경제부국으로 만들겠다는 열망 때문이다. 미국 관료그룹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이 선호하는 ‘북한의 선 핵포기를 통한 비핵화’는 어렵다. 서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재 해제의 비전을 적극 제시하면서 이를 비핵화와 연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칼럼 |
[이종석 칼럼] 혜산시의 변화와 김정은의 비핵화 동기 |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수용한 것은 ‘현재의 배고픔’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북한을 경제부국으로 만들겠다는 열망 때문이다. 미국 관료그룹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이 선호하는 ‘북한의 선 핵포기를 통한 비핵화’는 어렵다. 지난주에 북한-중국 국경 지역을 답사하고 돌아왔다. 늘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혹은 중국 국경수비대의 통제로 어려움을 겪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공직생활 기간을 빼면 거의 해마다 치르는 행사다. 처음에는 문헌이나 탈북자 증언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북한 경제사정 파악에 대한 갈망으로 이 여정에 나섰다. 그렇지만 아무리 북한과 가까운 국경에 가도 그 외관만 관찰될 뿐 정작 속사정을 알기는 어려웠다.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답사를 다니며 북한 경제의 민낯을 보고자 시계열적으로 변화를 추적했다. 이 방법이 외부 관찰을 통해 북한 내부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관찰 20년 동안 북한의 국경 도시나 마을은 집 한 채 신축되는 것을 보기 어려울 만큼 낙후 상태에서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 확 달라졌다. 2014년부터 국경 곳곳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더니 2015년에는 그 현상이 두드러졌다. 도처에서 공동주택, 공공기관 등의 신·개축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수송 차량이 증가했으며, 뙈기밭으로 누더기가 된 산들에 일부 조림이 시작되었다. 북한 경제의 성장을 증명하는 움직임이 다양하게 포착되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초고강도 대북제재가 발효된 작년에는 사정상 답사를 걸렀다. 그리고 올해 어느 때보다도 특별한 궁금증을 가지고 다시 국경 답사에 나섰다. 과연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모처럼 살아나던 북한 국경지방의 경제 활력을 얼마나 꺾어 놓았을까? 이미 한국은행이 2017년 북한의 실질 지디피(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3.5% 감소했다고 발표한 터였다. 결과는 거꾸로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북한 곳곳에서 2년 전보다도 더 활발하게 건설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압록강 상류의 양강도 혜산시에서는 수십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나 대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차역, 세관 등도 막 다시 지어졌다. 짐이나 광물을 실은 트럭과 택시 등이 쉼 없이 오갔으며, 만포-혜산 철도선에서 오랜만에 화물을 가득 실은 열차들을 볼 수 있었다. 공장 가동이 더 활발해졌고, 뙈기밭의 퇴화가 더 두드러졌으며, 조림지역도 크게 증가했다. 답사 23년 만에 처음으로 압록강 중상류에서 농지 보호를 위해 시멘트 제방을 쌓는 광경도 보았다. 이번 답사에서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띤 북한 경제를 목격했다. 최대의 압박과 제재가 무색해 보였다. 이 경제 활력이 현재 진행 중인 북-중 경협과도 크게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북한 관광이 활발해졌을 뿐, 무역업자들은 여전히 제재의 고통을 호소하고 북한식당에서조차 북한산 해산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재 전선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뜻이다. 결국 북한 경제의 활력은 내부의 자력적인 발전 동력을 통해 확보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을 다 알기는 어려워도 김정은 시대에 북-중 교역에서 수입 주력 품목이 기존의 광물유, 곡물 등에서 전기기기, 기계, 차량 및 부품 등으로 바뀌었는데, 그 결과가 경제적 확대재생산 기반을 갖추는 쪽으로 나타난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한국은행의 북한 지디피 통계는 북한 경제 활력에 영향을 미치는 일부 경제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초고강도 대북제재와 북한 경제의 활력 사이에 발생한 괴리가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제재가 북한 경제를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지 못한다는 증거로서 제재 기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최대의 압박과 제재로 인해 북한 경제가 한계에 도달하여 김정은이 마지못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면, 북한 비핵화를 위해 이 제재를 지속하는 것이 분명 효과적이다. 그러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 주민들이 하루 세끼를 굶지 않는다는 사실은 김정은이 당장의 경제적 난관을 회피하기 위해 비핵화 의지를 밝힌 것이 아님을 뜻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수용한 것은 ‘현재의 배고픔’을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재 해제를 통해 고도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여 북한을 경제부국으로 만들겠다는 열망 때문이다. 미국 관료그룹이 이 점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에서는 그들이 선호하는 ‘북한의 선 핵포기를 통한 비핵화’는 어렵다. 서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제재 해제의 비전을 적극 제시하면서 이를 비핵화와 연동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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