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때로는 공개적인 단호한 모습도 필요하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역정을 내서라도 전쟁 얘기가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당장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미국발로 지펴지고 있는 선제공격론을 잠재워야 한다. 젠틀맨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2018년 새해를 맞는 오늘 전쟁의 화약 냄새가 한반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 상상하고 싶지 않으나 논의를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따져본다. 두 가지다. 첫째, 휴전선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이다. 이는 정전 이후 60여년간 남북이 휴전선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거듭하면서도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회피하는 관성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휴전선을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막으려고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가해 발생하는 전쟁이다. 이때는 북한이 미군 기지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남한을 공격하여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에서는 북한군이 전력상의 절대열세를 인식하여 남한 공격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핵무기 개발을 통해 절대권력을 구축해온 김정은 정권이 미국의 공격으로 핵시설을 상실하고도 저항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정권 소멸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쟁을 택할 것이다. 아마 이 전쟁이 끝을 본다면 한-미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겠지만 중간에 국제사회의 중재로 다시 휴전으로 봉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이 어느 쪽으로 귀결되건 상관없이 핵무기를 포함하여 서로 상대방을 파괴하고도 남을 가공할 무기들이 전쟁 초반에 동원되어 남북한이 초토화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 북한 선제타격은 자신에게 큰 피해가 미치지 않는 예방전쟁이겠지만,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처럼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하는 멍청한 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부 미 고위인사들이 미국의 안전보호라는 명분 아래 전쟁 불가피론에 군불을 때더니, 이제 미국 조야는 거리낌 없이 전쟁을 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게다가 외신은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수개월 안에 선제타격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한-중 정상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에 합의했는데 여기서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우려가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자주 의견을 교환해왔다. 아마 두 지도자는 트럼프로부터 대북 군사공격 의향을 빈번하게 들었을 것이며, 그때마다 우려를 전달하며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 우려를 귀담아들었을 리 없다. 그래서 ‘절대’라는 단호한 표현을 써가며 전쟁 불용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을까? 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배경을 다룬 <낙엽이 지기 전에>의 저자인 김정섭 박사는 이 대전을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일어난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규정한다. 그는 ‘방어가 유리했는데도 선제공격의 유혹과 공포에 굴복했고, 충돌이 불가피하지 않았는데도 전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였으며,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자 했을 뿐이지만 바로 이런 억제 노력 때문에 억제가 깨진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다고 우리를 일깨운다. ‘가공할 보복능력을 보유한 남북한 쌍방 간에는 이미 공포의 균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의 유불리를 따질 구조가 아니다’라는 그의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우리 국민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온화한 점잖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젠틀맨이다. 그래서인지 대미외교에서도 삐걱거리며 시끄럽기보다는 조용히 원만하게 타협과 절충점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그 방식이 성과도 거두지만 초강대국 외교에서는 상대방 설득이 어렵고 오히려 끌려다니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공개적인 단호한 모습도 필요하다. 우리는 문 대통령의 ‘전쟁 절대 불용’ 천명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아가 역정을 내서라도 전쟁 얘기가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참모들도 너무 점잖게 있지 말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당장 평창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서라도 미국발로 지펴지고 있는 선제공격론을 잠재워야 한다. 젠틀맨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포옹하고 미소짓는 것만 외교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 훌륭한 외교일 수 있다.
칼럼 |
[이종석 칼럼] 젠틀맨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때로는 공개적인 단호한 모습도 필요하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역정을 내서라도 전쟁 얘기가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당장 평창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미국발로 지펴지고 있는 선제공격론을 잠재워야 한다. 젠틀맨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2018년 새해를 맞는 오늘 전쟁의 화약 냄새가 한반도 주변을 맴돌고 있다. 상상하고 싶지 않으나 논의를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따져본다. 두 가지다. 첫째, 휴전선에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쟁으로 비화하는 경우이다. 이는 정전 이후 60여년간 남북이 휴전선에서 크고 작은 충돌을 거듭하면서도 전면전으로 이어지는 것을 회피하는 관성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가능성이 낮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휴전선을 이전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상황을 사전에 막으려고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선제공격을 가해 발생하는 전쟁이다. 이때는 북한이 미군 기지에 대한 보복을 명분으로 남한을 공격하여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에서는 북한군이 전력상의 절대열세를 인식하여 남한 공격을 감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나, 핵무기 개발을 통해 절대권력을 구축해온 김정은 정권이 미국의 공격으로 핵시설을 상실하고도 저항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정권 소멸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전쟁을 택할 것이다. 아마 이 전쟁이 끝을 본다면 한-미 연합군의 승리로 종결되겠지만 중간에 국제사회의 중재로 다시 휴전으로 봉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이 어느 쪽으로 귀결되건 상관없이 핵무기를 포함하여 서로 상대방을 파괴하고도 남을 가공할 무기들이 전쟁 초반에 동원되어 남북한이 초토화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 북한 선제타격은 자신에게 큰 피해가 미치지 않는 예방전쟁이겠지만,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의 말처럼 ‘죽음이 두려워 자살을 하는 멍청한 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일부 미 고위인사들이 미국의 안전보호라는 명분 아래 전쟁 불가피론에 군불을 때더니, 이제 미국 조야는 거리낌 없이 전쟁을 말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게다가 외신은 미국이 대북 군사공격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수개월 안에 선제타격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한-중 정상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에 합의했는데 여기서도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우려가 느껴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이나 전화통화를 통해 자주 의견을 교환해왔다. 아마 두 지도자는 트럼프로부터 대북 군사공격 의향을 빈번하게 들었을 것이며, 그때마다 우려를 전달하며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 우려를 귀담아들었을 리 없다. 그래서 ‘절대’라는 단호한 표현을 써가며 전쟁 불용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지 않았을까? 1차 세계대전의 원인과 배경을 다룬 <낙엽이 지기 전에>의 저자인 김정섭 박사는 이 대전을 “잘못된 믿음 때문에 일어난 불필요한 전쟁”이었다고 규정한다. 그는 ‘방어가 유리했는데도 선제공격의 유혹과 공포에 굴복했고, 충돌이 불가피하지 않았는데도 전쟁을 숙명처럼 받아들였으며, 힘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자 했을 뿐이지만 바로 이런 억제 노력 때문에 억제가 깨진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다고 우리를 일깨운다. ‘가공할 보복능력을 보유한 남북한 쌍방 간에는 이미 공포의 균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선제공격의 유불리를 따질 구조가 아니다’라는 그의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우리 국민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이미지는 조용하고 온화한 점잖은 사람이다. 한마디로 젠틀맨이다. 그래서인지 대미외교에서도 삐걱거리며 시끄럽기보다는 조용히 원만하게 타협과 절충점을 찾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그 방식이 성과도 거두지만 초강대국 외교에서는 상대방 설득이 어렵고 오히려 끌려다니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공개적인 단호한 모습도 필요하다. 우리는 문 대통령의 ‘전쟁 절대 불용’ 천명 속에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나아가 역정을 내서라도 전쟁 얘기가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참모들도 너무 점잖게 있지 말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당장 평창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서라도 미국발로 지펴지고 있는 선제공격론을 잠재워야 한다. 젠틀맨도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포옹하고 미소짓는 것만 외교가 아니다. 때로는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화를 내는 것이 훌륭한 외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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