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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2 21:37 수정 : 2010.05.02 21:37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1987년 대통령선거 때 한나라당의 할아버지뻘쯤 되는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는 민족자존을 외치며 한국전쟁 중 유엔군(미군) 사령관에게 넘겨주었던 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겠다는 공약을 하였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고, 한국은 북한보다 실질 경제규모 100배, 1인당 국민소득 50배, 국방비 최소 10배에 달하는 강한 나라가 되었다. 북한의 맹방이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시장경제로 돌아서고, 그들과 한국의 교류협력이 북한보다 수십배 앞서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이렇듯 변화된 안보환경 속에서 참여정부는 작전통제권의 본질인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의 환수(전환)를 추진하였다. 어느 나라도 불리한 전시상황이 아닌 한 군사주권의 실체인 전작권을 다른 나라에 위임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한국만이 예외다.

전작권 환수에 강력한 의지를 가졌던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여름 군에 필요한 전력소요와 준비기간을 물었다. 군은 정보자산, 지휘통제전력 등의 강화가 필요하며, 준비과정을 고려할 때 2012년경이 환수 시기로 적당하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군의 판단을 존중했다. 정부는 8년간의 준비기간을 산정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방비를 증액했으며, 미국을 설득하여 쉽지 않은 대미협상을 비교적 원만하게 마쳤다.

전작권 환수의 요체는 우리가 능력 부족으로 미국에 위임했던 것을 이제 능력을 갖추었으니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은 반미와 무관하며, 오히려 호혜적인 한-미 관계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우리 군과 시민사회 일각에 뿌리박힌 병적인 대미 의존 심리를 극복하여 우리나라가 건강한 주권국가로 발전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작권 환수는 우리 국방능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를 통해 국민은 위기상황에서 병력과 장비와 상황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는 군을 목격하였다. 국민이 건강한 아들을 군대에 보내주고 세금을 많이 내서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갖추게 해 주어도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능력을 못 갖추면 소용이 없음을 보았다. 지난 60년간 독자적으로 작전을 기획하고 운용해보지 못한 우리 군대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더 늦기 전에 전작권을 환수하여 작전기획 및 운용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안보위기를 강조하며 오히려 전작권 환수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정권의 무능력보다 국민의 안보의식이나 장병들의 군기를 탓한다. 노무현의 정책이기에 앞서 박정희의 꿈이었으며 주권국가들의 보편적 지향인 자주국방을 혐오하고 반미로 매도한다. 안보를 강조하지만 그 기준을 국익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서 찾는다. ‘위장’ 안보론자들인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매년 9% 안팎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며 방위역량을 강화하고 국가위기관리체계를 세운 정부는 친북좌파이고 국방비 증가를 3%로 낮추고 위기관리의 기초도 숙지하지 못한 정부는 안보정권으로 보인다. 합리성이 거세된 맹목이다.

이 맹목을 퇴치하기 위해 우리는 말해야 한다. 안보의식이나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국민이나 장병들이 아니고 정부 지도자들과 군 지휘관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물어야 한다. 북한보다 10배 이상의 국방비를 써왔으면서도 아직도 국군이 북한군보다 열세라면 역대 군 지휘부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그리고 밝혀야 한다. 입만 열면 국가안보를 읊어대는 그들에게 안보는 파당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장사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화합을 갉아먹는 안보장사꾼들이 설 자리를 없애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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