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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9.09 19:24 수정 : 2018.05.11 15:46

정연주 언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한편,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뒤 바로 유신헌법을 공포했다. 그해 11월21일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된 유신헌법의 핵심은 영구집권을 위한 갖가지 장치들이다. 대통령의 손아귀에 있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뽑게 하고,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늘리면서 중임 제한을 없애 영구집권의 길을 텄으며,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등 초헌법적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아울러 대통령이 추천한 국회의원의 3분의 1(유신정우회)을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국회도 장악하게 했고, 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런 괴물 같은 유신헌법에 따라 치러진 이후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이게 한 편의 끔찍한 블랙코미디지, 어찌 실제 있었던 우리의 역사일 수 있을까 싶다. 한번 보자.

유신헌법이 확정된 뒤인 12월23일, 대통령 선출을 위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2359명 전원이 서울 장충체육관에 모였다. 투표율은 100%였고, 박정희 후보는 2357표로, 99.9%의 지지를 받았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다시 6년의 임기를 확보했다.

영구집권의 탄탄대로에 들어선 박 대통령은 거리낌없이 잇따라 긴급조치를 발동했고, 그 과정에서 반대자를 죽이거나 대량으로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하고, 수많은 이들을 일터에서 쫓아냈다.

6년의 임기를 끝낸 그는 1978년 7월6일, ‘개헌’ 소리만 해도 감옥에 집어넣던 긴급조치 9호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가운데 다시 ‘체육관 선거’를 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전원(2578명)이 체육관에 모여 100% 투표율을 보인 가운데 2576명이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 이번에도 99.9%라는 괴기스러운 지지율이 나왔다.

이런 모진 역사가 흘러가는 과정에 박근혜씨는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때로는 공주처럼, 때로는 여왕처럼 그렇게 우아한 몸짓으로.

유신이라는 괴물이 지배하던 그 시대를 지금도 끔찍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유신이 없었으면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외친 홍사덕 전 의원도 그런 인물이다. 하지만 유신과 그 뿌리인 5·16 쿠데타에 대해 조금도 굽힘없이, 단단한 결의를 가지고 일관된 평가를 내려온 인물은 단연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이다. 그는 5·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했고, “유신은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런 발언과 인식에 역풍이 불자, 이제는 ‘과거의 일’이니 역사에 맡기고 그만 왈가왈부하잔다.

‘유신 공주’답게 고고하고,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독선적이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마디 툭 던지면서 그것으로 상황과 논쟁이 종결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국말 모르세요?”, “병 걸리셨어요?”, “지금 저랑 싸우자는 거예요?”라고 톡 쏘아붙인다.

유신의 절대권력, 그 제왕적 권력을 마음껏 즐겼던 그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독선과 오만을 너무 닮았다. 이런 태도의 압권은 안철수 교수에 대한 ‘불출마 압박’과 관련한 그의 최근 발언이다. “서로 오래 친구라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그러는데 그런 걸 이렇게까지 확대 해석하는 건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개인적인 대화니 그걸로 논쟁은 끝이라는 식이다. 공적인 일을 사적 영역이라고 보면서 이게 무슨 문제냐는 그 옅은 인식, 독선의 폐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랬고, 박근혜 의원도 그렇고, 주변에 직설과 비판을 하는 이들이 없는 ‘종박(從朴) 체제’의 한계이자 비극이다.

세상을 보는 눈과 태도가 이처럼 유신적이고, 박정희적인 이상, 본질이 쉽게 바뀔 리 없다. 연좌제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유족을 찾아가고, 전태일 동상을 찾아가고, 이런저런 몸짓들을 하지만 그게 일회성 이벤트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달라질 게 뭣 있겠는가.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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