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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12 19:38 수정 : 2018.05.11 15:44

정연주 언론인

겨울바람이 매서웠던 날, 조그만 찻집에서 그를 만났다. 2년 전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된 <문화방송> 전 노조위원장 이근행 피디다. 그와 함께 온 동료들은 제대로 된 방송뉴스를 만들어 보자며 뭉친 전·현직 방송 언론인들. 찻집의 한 방에 카메라가 놓이고, 금방 녹화 준비가 끝났다. 카메라는 방송사에서 늘 보던 대형 카메라가 아니다. 조그만 캠코더 같은 것이었다.

“50만원 주고 산 중고 카메라예요.” 이근행 피디가 말했다. 그 카메라 앞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고, 그 모습이 <뉴스타파> 1회분에 나갔다.

이날의 풍경은 지금 우리 시대의 많은 것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우선, 이 시대의 우스꽝스런 ‘비정상’의 한 단면이다. ‘적군 방송’(경쟁관계에 있는 <한국방송>과 <문화방송> 직원들은 우스개로 서로를 그렇게 부른다)의 해직 사장과 해직 노조위원장이 마주 앉아 뒤집어진 방송 현실을 이야기했다. 2년 전에도 이근행 위원장을 만난 일이 있다. 문화방송 파업 현장에서다. 나는 그때 ‘적군 방송’ 노동자들에게 “열심히 싸우라”고 격려했다. 며칠 전, 방송 자유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 <문화방송> 파업 현장을 다시 찾았다. “쫄지 말고 싸우라”고 했다. 감봉, 정직, 해직 따위에 ‘쫄’ 필요가 없다고, 그런 악행들을 통해 가해자들의 야만성, 폭력성이 낱낱이 드러나기 마련이며, 끝내 그런 것들이 쌓여 가해자들이 서 있는 자리는 붕괴되기 마련이라고. 불가에서는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 하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 이런 역행보살의 사례들이 차고 넘친다.

이근행 피디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풍경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대적 표상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미디어 혁명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새 희망이다. 아날로그 시절, 거대자본 없이 언론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문을 하거나 방송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자본이 필요했다. 그 거대자본이 높디높은 진입장벽이었고, 그래서 거대자본만이 언론을 소유하면서 독과점 체제를 만들어 여론을 쥐락펴락했다. ‘밤의 대통령’도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은 참으로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무수한 1인 미디어가 탄생했고, 방송을 하는 데도 큰돈이 필요없게 되었다. <나꼼수>로 대표되는 팟캐스트,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로 퍼지는 <뉴스타파> 등은 말 그대로 ‘혁명’이다. 여기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맹렬한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지는 새로운 유통경로를 통해 이 ‘장외 언론’은 아날로그 조중동의 독과점 체제를 압도해버린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이달 초 행한 <나꼼수> 청취경험 여론조사를 보면 놀랍다. ‘<나꼼수> 방송을 들어본 적도 있고, 잘 알고 있다’는 청취 경험자가 30%, 유권자 수로는 무려 1100만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뉴스타파> 한 회분을 본 시청자가 60만명을 훌쩍 넘었다. 평균 0.3%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조중동 종편 시청 가구를 세 개 모두 합쳐봐야 15만가구 안팎 정도이니, 50만원짜리 중고 카메라로 인터뷰를 담은 <뉴스타파>가 수천억원을 들인 조중동 종편 세 개를 한 방에 날려버린 셈이다.(이런 조중동 종편에 광고하는 ‘바보 광고주’들은 누구일까.)

이 ‘멋진 신세계’의 기적들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권 덕분이다. 정권의 하수인들이 방송을 장악하면서 ‘사실보도’라는 언론의 일차적 기능마저 거부되자, 국민들은 ‘참뉴스’를 갈망하게 되었다. ‘정통 뉴스’를 전하는 <뉴스타파>의 폭발적 인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마당극 같은 <나꼼수>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내내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때 <나꼼수>가 홀로 독야청청하면서 실어 나른 정보량이 엄청나다. 그런 점에서 공영방송의 언론인으로서 부끄럽고, (<나꼼수>가) 고마웠다”고 한 문화방송 이보경 기자의 ‘고백’은 이 ‘장외 언론’들의 거대한 영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조중동 수구언론의 독과점 체제를 부수는 ‘멋진 신세계’가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명박 시대 역행보살의 축복이며, 새 희망의 근거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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