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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5 19:37 수정 : 2018.05.11 15:44

정연주 언론인

“죽도록 팼는데 안죽었으니 축하? 그런데
죽도록 팬 것에 대해선 책임 못지겠다?”

위입서궁(蝟入鼠宮),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꼴’이다. 고슴도치가 쥐를 잡아먹겠다고 쥐구멍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몸에 숭숭 난 그 뾰족한 침들로 인해 굴속에 끼어서 오도 가도 못하고 끝내 죽게 될 형국을 뜻한다. 원효대사가 출가 수행자를 위해 지은 <발심수행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과 참 절묘하게도 들어맞는다. 탐욕, 부패, 오만, 독선, 권력 탐닉, 권력 남용 - 이 정권의 인사들 몸에 돋아난 뾰족한 고슴도치 침들과 그들의 운명이다.

우선 조·중·동 종편방송이 영락없는 위입서궁의 형국이다. 온갖 반칙과 특혜, 불공정을 통해 탄생한 조·중·동 방송이 ‘죽음의 늪’인 0.3% 시청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위입서궁의 모습 아닌가. 개국 한 달도 안 되어 방송을 내려버린 프로도 있고, 재방송을 계속 돌려대는 프로그램도 수두룩하다. 광고주들이 돈 들여 광고를 해야 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길이 없는 방송이다.

광고주들이 광고하기를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이렇다. 첫째, 시청률이 15% 이상 되는 대박 프로. 둘째, 주된 시청층이 구매력이 가장 높은 20, 30대의 젊은층인 프로. 주 시청층이 50대 이상인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웬만큼 나와도 광고주들이 광고를 잘 하지 않는다. 셋째, 자기 광고가 나오는 프로그램 앞뒤에도 시청률이 괜찮은 프로들이 포진한 그런 편성을 좋아한다. 그래야 채널이 다른 데로 돌아가지 않아 광고 효과가 높다.

그런데 지금 조·중·동 종편은 눈을 씻고 봐도 광고주들이 좋아할 건더기가 없다. 시청률은 ‘애국가 시청률’이라고 조롱받고 있는 0.3%대이고, 시청층의 80%는 50대 이상이고, 편성은 이걸 편성이라고 내걸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이런 정도면 광고료를 매기기조차 쉽지 않다. 그냥 산술적으로만 이야기하면 0.3%의 시청률이니 지상파의 20분의 1 정도가 맞는데, 광고 효과를 따지면 돈 드는 광고 안 하는 게 시장원리에 맞는 선택이다. 수구정권 연장이라는 정치적 탐욕, 약탈적 광고영업 행태 등 온몸에 고슴도치 침들이 잔뜩 돋아나 있는 조·중·동 종편이 위입서궁의 처지가 되어버렸다.

위입서궁의 처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것 말고도 많다. 국가의 권력을 공동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과 탐욕을 위해 남용하여 그 결과 부패, 비리, 권력 남용의 고슴도치 침들이 되어버린 일들이 지금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이 가운데는 나와 개인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도 있다.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이 내려진 나의 ‘배임사건’이다. 나를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들(이기옥 수사 검사, 박은석 현 대구지검 2차장, 최교일 현 서울중앙지검장, 명동성 당시 서울지검장,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은 권력 남용의 뾰족한 침들로 나의 삶과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참회도, 사과도, 책임지는 일도 없다. 국민적 깨달음과 저항으로 검찰 개혁이 이뤄지면 그들도 위입서궁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다.

나의 강제해임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참으로 많은 고슴도치 침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만과 독선의 독침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러니 국민도 우습게 본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책임을 지겠다고 국회에서 두 번씩이나 공언해 놓고도, 며칠 전 국회에서 딴전을 피웠다. 미안하기는 한데 책임은 못 지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 사법부 결론에 대해서는 축하를 보낸다.” 그러면서 “책임지겠다는 말은 했지만 그게 사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느 누리꾼이 이런 말을 했다. “죽도록 두들겨 팼는데 안 죽고 살아났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안 죽었으니 축하한다. 그런데 죽도록 팬 것에 대해서는 책임 못 지겠다. 그런 말이 아니냐”고.

이런 식의 이야기를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했다.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보았으면 그랬을까 싶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오만과 독선의 대통령 멘토다운 모습이다. 그 역시, 그리고 이 정권 역시 위입서궁의 운명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정연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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