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18 19:24
수정 : 2011.11.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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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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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탐욕과 체험
진짜 세상공부는
이제부터 시작
동쪽 변방에 자리한 고향으로 가는 마지막 고개에서는 항상 멀미가 난다. 이제는 아흔아홉 구비 구절양장 대신 산을 뻥뻥 뚫어낸 일직선의 대로를 따라가는 길인데도 그렇다. 나고 자란 사오싱(소흥)을 배경으로 숱한 명작들을 쓰고도 때로 “신이 노하여 홍수로 쓸어가 버려도 좋다”고 저주를 퍼붓던 루쉰처럼, 고향에 대한 애증은 끝없이 탈출을 꿈꾸었던 이단자의 숙명일까. 흔들리는 추억 속에 그리움과 환멸감이 뒤엉켜 어지럽다.
이번 귀향길이 더욱 어수선한 것은 이십여년 전의 나를 만나러 가기 때문이었다. 전교조 지회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내가 만날 이들은 일주일 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들. 해방감과 허탈감, 그 모순된 감정의 경계쯤에 있을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꼭 그들 나이였을 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할 말이 없을 듯, 무수히 많을 듯도 싶었다.
나는 그곳에서 이른바 ‘명문’ 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스스로 자부하는 명문이 아닌 남이 부여한 명문의 타이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청소년기를 온통 저당 잡혀야 했다. 끝없는 시험과 교실 앞 복도에 게시된 1등부터 꼴등까지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두루마리, 몽둥이찜질과 단체기합과 수치심을 자극하는 욕설, 평균 점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흙바닥에 한 시간 동안 꿇어앉았다 일어났을 때 벌목된 나무처럼 쿵쿵 쓰러지던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성적이 오르는 만큼 맷집과 반항심은 비례하여 떠나올 때쯤엔 뒤돌아보기조차 싫을 지경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고교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았던 고향에 내후년부터 평준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명문’ 학교의 일부 동문들이 그 결정에 반대한다는 말도 들리지만, 나는 후배를 성적의 높낮이로 구분해 차별할 생각이 없다. 사회 진화의 어떤 단계에서는 경쟁을 통한 엘리트주의가 효력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서열화를 통해 잃는 것들이 훨씬 많다. 적어도 후배들은 나처럼 학교와 교사와 교육 자체에 트라우마를 가진 ‘성공적인 실패작’으로 자라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강연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예상대로 예뻤다. 아니, 아이들은 언제나 예쁘다.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예뻤는지는 모르지만, 분명코 그들이 속내에 감춘 만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해 겨울, 나는 대학입시를 일주일 앞두고 가출했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시험을 치르고 운 좋게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긴 했으나, 친구들이 미팅을 하고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 때 도시 외곽의 벽촌을 도는 시내버스 안내양으로 취직했다. 가출을 하기에는 타이밍이 좋지 않았고 ‘알바’치고는 생뚱맞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선거 관련 뉴스 앞에서 아버지와 밥상을 던지며 싸웠다고 해서 ‘정치적인’ 가출이라 할 수도, 큰 뜻을 품고 ‘브나로드’ 운동을 벌이고자 아르바이트를 감행했다고도 할 수 없다. 돌이켜 곱씹어보건대 열아홉살의 내가 저지른 돌발적인 사건들은 오직 경쟁과 억압 속에 잃어버린 나를 알고, 나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상처만큼만 넓어지는 세상 속으로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나는 인생의 선배로서 감히 조언한다. 여태껏 받아들고 한숨짓던 성적표의 등수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길. 지금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행복은 성적순일 수 없다(언젠가 차라리 행복이 성적순이었으면 좋겠다고 칭얼댔던 헛똑똑이 선배의 말이니 믿을 만하다). 진짜 공부-세상 공부, 사람 공부, 인생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용되어 마땅한 지적 허영과 권장되어 마땅한 체험에 대한 탐욕으로 한껏 들썽들썽 걸신스럽게 공부해야 한다. 부디 그 큰 배움터에서 용맹 정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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