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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5 18:28 수정 : 2019.07.26 09:45

정인환
베이징 특파원

“백주몽(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꿈과 비슷한 의식 상태)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 휴전 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 ‘기이한 전쟁’의 종막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다시 7·27이다. 해마다 이맘때 펼쳐들게 된다. ‘전설의 전쟁기자’ 최병우가 ‘기이한 전투의 정지’란 제목으로 쓴 정전협정 조인식 현장 기사다. 최병우는 정전협정 조인식이 끝난 시간을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12분’으로 기록했다.

“조인이 계속되는 동안 유엔 전폭기가 바로 근처 공산군 진지에 쏟고 있는 폭탄의 작렬음이 긴장된 식장의 공기를 흔들었다. …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라는 설명을 잘 알 수 있었다.”

66년이 쏜살처럼 흘렀다. 우리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지난해 4월27일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오갔다. 지난 6월30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와 함께 판문점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함께 군사분계선의 남과 북을 넘나드는 모습은 초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아직, 거기까지다. 판문점 남·북·미 3자 정상회동의 감동이 여전한데, 북-미는 아직 협상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한-미 연합훈련이 거론되더니, 북이 단거리 발사체를 동해로 쏘아 올렸다. 우리는 아직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전’이지 ‘평화’가 아니다.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를 비롯한 대치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한반도 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해소로 이어나가기로 하였다.”

지난해 9월19일 남과 북은 평양공동선언 1조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남과 북이 만들어낸 사실상의 ‘종전선언’이었다. 선언에 합의한 뒤 문 대통령은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됐다. 한반도 전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없애기로 합의했다”고 감격해했다. 김 위원장도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확약했다”고 화답했다.

아직, 거기까지다. ‘대치 지역에서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을 위해 남과 북은 비무장지대에 설치한 초소를 폭파했지만, ‘실질적인 전쟁위험’은 제거되지 않았다. 북-미 간 ‘근본적인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못한 탓이다. ‘정전’은 ‘종전’이 아니다. 전쟁을 끝내야 평화로 갈 수 있다. 남과 북이 지난해 판문점선언 3조 3항에서 이렇게 합의한 이유다.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종전선언’은 끝이 아니다. 적대의 끝을 알리는 시작이자 평화로 가는 잠정 조치다. 전쟁에 마침표를 찍은 뒤에는 관계 정상화와 제재 완화가 이어져야 한다. 미국의 대북제재 자체가 전쟁에서 출발한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첫걸음과도 맞물려 있다. ‘새로운 북-미 관계’는 체제 안전 보장의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이 본격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동할 수 있는 마중물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종전선언’은 협상의 결과로 내주는 ‘선물’이 아니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다. 협상의 들머리에서 머뭇거릴 이유가 있는가? ‘기이한 전쟁’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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