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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21 17:55 수정 : 2019.03.22 09:27

조기원
도쿄 특파원

가끔 들르는 동네 서점이 있다. 잡지, 여행 및 스포츠 같은 취미 관련 서적 그리고 베스트셀러 위주로 진열해놓은 평범한 서점이다. 대중적으로 팔리지 않을 만한 책은 눈에 띄지 않는 서점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 소설인 <82년생 김지영>이 매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었다. 동네 서점에서 한국 책을 본 일 자체가 개인적으로는 처음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12월 일본 출판사 지쿠마쇼보에서 번역 출간한 뒤 지금까지 9만부가량 발행됐다. 100만부 넘게 팔렸다는 한국에 비하면 적지만, 일본에서 발간된 한국 소설로는 이례적인 발행 부수다. 일본에서도 <토지> 같은 대표적 한국 문학 작품이 번역 소개되고 있지만, 대중적인 주목을 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한 일본 출판 관계자는 “일본인 저자들 중에서도 유명 저자가 아니면 팔리기 어려운 수준의 판매량이다. 일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저자의 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치”라고 말했다.

지은이 조남주씨는 지난달 19일 일본 최대 서점인 도쿄 기노쿠니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도 참석했다. 조씨는 <82년생 김지영>의 일본 내 인기에 대해서 “놀랐다”며 “일본 독자들이 에스엔에스(SNS)나 인터넷에 소설을 읽고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국과 일본의 사회 분위기가 닮은 점이 있어서 일본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지쿠마쇼보는 기자회견 뒤 일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유료 행사를 열었다.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와의 대담회였다. 지쿠마쇼보는 이 행사를 위해 좌석 400개를 마련했지만 접수 며칠 만에 매진됐다. 행사장 밖에서 영상으로 행사 내용을 볼 수 있는 간이 좌석 50석도 추가로 마련했지만 만석이었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배경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비슷하게 안고 있는 씁쓸한 현실이 있다. 여성에 대해서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닮아 있다. 국제기관에서 내는 성평등 관련 각종 통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은 엇비슷하게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국제의원연맹(IPU)이 집계한 1월 기준 여성 의원 비율은 전체 193개국 중 한국이 121위, 일본 165위(중의원 기준)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8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전체 149개국 중 115위였고 일본은 110위였다. 우열을 따지는 게 별 의미가 없어 보일 정도로 둘 다 하위권이다.

반대로 최근 일본에서 화제를 낳은 만화 <사요나라(안녕) 미니스커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도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놓는다고 해도 별로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소녀 만화 잡지 <리본>에 연재되고 있는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이돌로 활동했던 경력을 감추고 생활하는 고교생 가미야마 니나다. 팬을 자처하는 남성에게 습격을 받아 상처를 입은 뒤 아이돌 활동을 그만뒀다. 가미야마는 머리를 남성처럼 짧게 자르고 치마는 입지 않는다. 늘 바지를 입고 다닌다. “여성성을 이용해서 돈을 벌었으니, 원한을 살 수도 있다”는 식의 주위 반응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치마를 즐겨 입는 동급생이 성추행을 당한 것에 대해 주변 남성들이 치마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말하자, 가미야마가 내뱉은 대사가 유명하다. “치마는 너희 같은 남자들을 위해서 입는 게 아니야.” 대사 자체로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치마를 입든 입지 않든 본인의 자유일 뿐 타인이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성 그리고 남성성을 과장되게 강조하는 사회에서 이 대사는 당연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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