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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7 18:03 수정 : 2019.03.08 13:59

정인환
베이징 특파원

‘온 세계를 진감시킨 2만여리 대장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치 1면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박태덕 당 중앙위 부위원장 명의로 실렸다. 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 단행하신 2만여리 대장정은 … 역사적인 장거”라고 썼다.

‘열흘 낮, 열흘 밤.’

같은 날 신문이 2면에 실은 정론의 제목이다. 김 위원장이 2월23일 오후 전용열차편으로 평양을 떠나 중국 대륙을 관통해 베트남을 다녀온 기간을 일컫는다. 그 기간에 북 전역에서 매일 생산량을 초과 달성하며, “일심단결의 국풍을 만방에” 떨쳤단다.

지난 5일 새벽 김 위원장의 귀국 소식이 전해진 뒤 북쪽 매체에선 이런 유의 보도가 넘쳐나고 있다. 이른바 ‘내부 단속용’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건 따로 있다. 지난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열흘 낮, 열흘 밤’ 동안 무려 ‘2만여리의 대장정’을 벌였는데도 회담은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북쪽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일 게다.

미국은 어떨까? ‘최선의 합의가 아니면 아예 합의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식 ‘협상의 기술’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원한 ‘최선’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시각) <폭스 뉴스> 등에 출연해 구체적으로 밝혔다. 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핵무기는 물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전부 포기하라. 그리하면 밝고 풍요로운 미래가 열린다.”

30년 가까이 이어진 이른바 ‘북핵’ 문제를 두고, 역대 미국 행정부는 대체로 두 방식으로 접근했다. 첫째, 겁을 잔뜩 줘 핵을 포기하게 한다. 둘째, 아예 돈을 주고 사버린다. 이른바 ‘선제타격’이니 ‘외과 수술식 타격’ 따위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협상을 통해 일정한 대가를 제공하는 건 후자에 가까울 터다.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도 강조했다. 뭐가 다른가?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따라 두차례 만남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방식만 놓고 보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내용은 어떤가? 볼턴 보좌관이 언급한 ‘최선’은 10년, 20년 전에도 ‘최선’이었다. 북핵 문제가 처음 시작될 무렵 국무부 국제기구 담당 차관보(1989년 5월~1993년 1월)를 지낸 볼턴 보좌관이 더 잘 알 게다.

주고받아야 협상이다. 미국의 ‘최선’이 북한에도 ‘최선’일 순 없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최선’을 고집하면 협상은 깨지고 만다. 애초 협상을 깨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최선’에서 얼마나 멀어지지 않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과거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북-미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세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를 만들면, 북한이 더 이상 핵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진다. 순서 그대로 합의서에 담았다.

‘비핵화를 통한 평화’는 거듭 실패한 옛 방식이다. ‘평화를 통한 비핵화’는 지금껏 걸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다. 북-미가 인식의 전환을 이뤘다고 세계가 반겼다. 더 늦기 전에 그 길로 돌아가야 한다. ‘최선’은 과정이다. 한번에 얻을 수 없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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