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특파원 김정은·트럼프 시대의 북-미 접근을 보면서, 박근혜·시진핑 시대의 한-중 접근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중국이 한국을 구슬려가며 자기 편으로 한껏 당겨보았듯, 미국도 북한을 자기 쪽으로 당겨가는 모양새로 보여서다. 지난해 3월 칼럼에서 중국의 이런 시도를 ‘중국판 햇볕정책’이라 했으니, 미국의 시도는 ‘미국판 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판과 미국판 햇볕정책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중국은 ‘혈맹’ 북한을 두고 남한을 끌어당겼고, 미국도 ‘혈맹’ 남한을 둔 상태에서 북한을 끌어당긴다. 지정학적 이익을 노린 정책임에도, 그런 탓에 당시 중국의 누군가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지금의 미국도 누군가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푸틴과 나란히 선 모습은, 한·미 일각에서 큰 충격과 우려를 샀다. 마찬가지로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은 북·중 일부에 혼란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북-미 정상회담 일주일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전승절 행사 참석 한달 뒤 박 전 대통령이 미국에 가 한국 내 보수와 미국을 안심시키던 광경을 닮았다. 중국과 미국의 변화 시도 탓에 기존 ‘혈맹’에 불안감이 조성되는 것도 유사하다. 현재 남한 일각에선 주한미군 철수를 불안해한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뒤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이 북한에 큰 충격을 준 것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사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중국은 경제·문화를 중심으로 한국과 교류를 확대시키는 직접적 방식이었다. 이는 중국의 성장과 맞물려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였다.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적 교류 확대·지원보다는 외교·군사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묶여 있는 손발을 풀어주는 방식을 쓸 것이 유력해 보인다. 북한은 대미 의존보다는 대외관계 정상화의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중국판 햇볕정책의 결말은 모두가 알듯 실패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훼방꾼’이 됐다. 미국의 견제가 심해졌고 한국의 입지는 좁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 등 ‘친미’로 돌아섰다. 중국은 한국을 잡았던 손을 거의 놔버렸다. 그 반동만큼 튕겨져나간 양국 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 미국판 햇볕정책의 결말은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중국판과는 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한국은 훼방꾼이 아니다. 한반도 정세를 여기까지 끌고 온 문재인 정부가 몇해 전 북한처럼 긴장을 고조시키며 지역 정세의 발목을 잡을 리 없다. 북-미 접근은 한국에 불리한 일도 아니다. 한-중 접근에 고립을 우려했을 북한과, 세계 12위 경제대국 한국은 다르다. 중국은 미국의 사드 배치처럼 북한에 ‘영역 표시’를 하려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종전 5년 뒤 병력을 모두 철수시킨 중국이 지금 와서 북한에 무기를 배치하기는 쉽지 않다. ‘일대일로’ 관련 사업들에서 보듯이 경제협력 확대로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는 것이 ‘중국식’이다. 최근 북-중 사이에 늘고 있다는 인적 교류도 궁극적으로는 ‘영역 표시’를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북한을 놓고 남한과 중국이 경쟁해야 하는 국면은 안타깝지만, 사드 때와 같은 미-중 구도의 소용돌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미국이다. 모두가 관건이라 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판단도 미국의 몫이다. 그런데 무역 갈등과 남중국해·대만 등 현안이 즐비한 오늘의 미-중 대결 구도에서 미국이 가까스로 잡은 북한의 손을 쉽사리 놓을까? 이 전망이 틀리지 않기를 바란다. oscar@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햇볕정책, 중국판과 미국판의 비교 / 김외현 |
베이징 특파원 김정은·트럼프 시대의 북-미 접근을 보면서, 박근혜·시진핑 시대의 한-중 접근이 묘하게 겹쳐 보였다. 중국이 한국을 구슬려가며 자기 편으로 한껏 당겨보았듯, 미국도 북한을 자기 쪽으로 당겨가는 모양새로 보여서다. 지난해 3월 칼럼에서 중국의 이런 시도를 ‘중국판 햇볕정책’이라 했으니, 미국의 시도는 ‘미국판 햇볕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판과 미국판 햇볕정책은 많은 점에서 닮았다. 중국은 ‘혈맹’ 북한을 두고 남한을 끌어당겼고, 미국도 ‘혈맹’ 남한을 둔 상태에서 북한을 끌어당긴다. 지정학적 이익을 노린 정책임에도, 그런 탓에 당시 중국의 누군가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지금의 미국도 누군가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2015년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시진핑·푸틴과 나란히 선 모습은, 한·미 일각에서 큰 충격과 우려를 샀다. 마찬가지로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은 북·중 일부에 혼란을 주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북-미 정상회담 일주일 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은 전승절 행사 참석 한달 뒤 박 전 대통령이 미국에 가 한국 내 보수와 미국을 안심시키던 광경을 닮았다. 중국과 미국의 변화 시도 탓에 기존 ‘혈맹’에 불안감이 조성되는 것도 유사하다. 현재 남한 일각에선 주한미군 철수를 불안해한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 뒤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방문한 것이 북한에 큰 충격을 준 것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사용하는 방식은 다르다. 중국은 경제·문화를 중심으로 한국과 교류를 확대시키는 직접적 방식이었다. 이는 중국의 성장과 맞물려 한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높였다.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적 교류 확대·지원보다는 외교·군사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묶여 있는 손발을 풀어주는 방식을 쓸 것이 유력해 보인다. 북한은 대미 의존보다는 대외관계 정상화의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중국판 햇볕정책의 결말은 모두가 알듯 실패였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훼방꾼’이 됐다. 미국의 견제가 심해졌고 한국의 입지는 좁아졌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 등 ‘친미’로 돌아섰다. 중국은 한국을 잡았던 손을 거의 놔버렸다. 그 반동만큼 튕겨져나간 양국 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타격을 입었다. 미국판 햇볕정책의 결말은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중국판과는 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한국은 훼방꾼이 아니다. 한반도 정세를 여기까지 끌고 온 문재인 정부가 몇해 전 북한처럼 긴장을 고조시키며 지역 정세의 발목을 잡을 리 없다. 북-미 접근은 한국에 불리한 일도 아니다. 한-중 접근에 고립을 우려했을 북한과, 세계 12위 경제대국 한국은 다르다. 중국은 미국의 사드 배치처럼 북한에 ‘영역 표시’를 하려 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종전 5년 뒤 병력을 모두 철수시킨 중국이 지금 와서 북한에 무기를 배치하기는 쉽지 않다. ‘일대일로’ 관련 사업들에서 보듯이 경제협력 확대로 영향력을 유지·확대하는 것이 ‘중국식’이다. 최근 북-중 사이에 늘고 있다는 인적 교류도 궁극적으로는 ‘영역 표시’를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이다. 북한을 놓고 남한과 중국이 경쟁해야 하는 국면은 안타깝지만, 사드 때와 같은 미-중 구도의 소용돌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미국이다. 모두가 관건이라 하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판단도 미국의 몫이다. 그런데 무역 갈등과 남중국해·대만 등 현안이 즐비한 오늘의 미-중 대결 구도에서 미국이 가까스로 잡은 북한의 손을 쉽사리 놓을까? 이 전망이 틀리지 않기를 바란다.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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