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08 18:22
수정 : 2015.10.08 18:22
도쿄에 부임하기 전 특파원 생활을 통해 나름의 답을 찾아보겠다고 결심했던 질문 가운데 하나는 한·일 양국의 ‘국력 차이’는 얼마나 될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래서 지난 2년간 만나는 일본인마다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기다려봤다.
답변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한국도 이젠 선진국”이라는 답을 내놨다. 일본에 살다 보니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본격화된 일본 내의 ‘반한 붐’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턱밑까지 쫓아온 한국에 대한 경계 심리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일본이 1980년대 말 ‘거품 붕괴’ 이후 20년 동안의 정체기를 거치는 사이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일부 분야에선 일본을 따라잡는 성과를 내고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한번도 마주해 본 적이 없는 대등한 한국이 느닷없이 등장한 셈이니, 일본인들이 ‘어랏’ 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일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올린 축적이 있으니 “한국이 곧바로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좀 힘들지 않겠냐”는 견해를 내놨다. 삼성이 아무리 세계 일류 기업이라 해도 갤럭시 폰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의 상당수가 일본제란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일본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다양한 지적·물리적 자산들엔 한국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어떤 ‘깊이’가 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며 한·일을 비교할 때 가장 눈에 띄는 양국의 차이는 다름 아닌 ‘규모’와 ‘저변’이다. 한-일 야구가 정면으로 자존심 대결을 벌였던 2009년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섯번을 싸웠다. 결과는 2승3패로 한국의 아슬아슬한 패배. 1990년대만 해도 감히 일본 야구를 넘볼 수 없었던 한국이 이제 일본과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칠 수 있는 단계까지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양국의 진정한 실력 차이일까. 그렇진 않다. 2015년 현재 일본의 고등학교엔 4021개 팀에 16만8898명의 선수가 소속돼 있다. 이는 한국의 고교야구팀(96팀)과 비길 바가 아니다. 한국의 베스트는 일본의 베스트와 맞먹거나 뛰어넘을 실력을 갖췄지만, 그런 팀을 이제 겨우 하나 만들어낼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비슷한 수준의 팀을 3~4개는 구성할 수 있다.
일본에서 어떤 문제를 취재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하고 싸워온 이들이 있다. 개인적 관심사인 일본 안보정책의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가면 ‘오키나와 텐트’가 헤노코 해안을 노려보고 있고, 일본에서 두번째로 ‘엑스밴드’ 레이더가 설치된 교토부 교탄고시에 가면 지금까지 500회 이상 기지의 변화를 사진으로 찍고 기록한 시민을 만날 수 있다. 지난 1일 요코스카에 갔더니 미국 제7함대의 변화를 27~28년 동안 관찰해온 지역 단체가 자신들이 애써 축적한 자료를 선뜻 건네줬다.
개인적인 감상을 조금 더 말하자면, 일본에 살며 가장 큰 열패감을 느낀 때는 일본 사회가 지난해 초 오보카타 하루코 이화학연구소 연구주임을 둘러싼 자극야기다능성획득(STAP)세포 논문 조작 논란을 풀어가는 방식을 본 뒤였다. 의혹이 불거지고, 이를 조사할 수 있는 위원회가 꾸려지고, 모두가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조작이란 결론이 나왔다. 2005년 황우석 사태와 달리 섣부른 ‘애국심’을 설파하며 진실 규명을 훼방하는 언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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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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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을 가진 모든 이들이 반대하는 국정화 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아직도 세월호 사태를 어쩌지 못하는 한국을 본다. 모두가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과학계의 성과를 경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 저력의 진정한 원인에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한국에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언제 나올까, 그런데 나오기는 할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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