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06 18:33
수정 : 2015.08.06 18:33
내 짧은 14년 기자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2010년 7월인가 취재를 핑계 삼아, 평소 뵙고 싶었던 그를 만나 여러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그가 남긴 여러 저작들, 이를테면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2003년), <일제강점기 도시사회상 연구>(1996년), <한국 도시 60년의 이야기>(2005년) 등을 읽고 너무나 강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서울의 도시계획과 한국의 사회문화사에 대해 그만큼 많이 알고, 깊이 있으며, 노련한 글을 쓴 인물을 나는 알지 못한다.
느닷없이 이런 얘길 꺼내는 것은 최근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어 있는 ‘롯데’ 얘길 하기 위해서다. 손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권을 보면 롯데의 성장 과정에 대한 긴 글이 수록돼 있다. 1922년 10월 울산에서 태어난 신격호는 와세다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3월에 도쿄 스기나미구 오기쿠보 4-82에 군수용 기름으로 빨랫비누를 만들어 파는 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를 설립한다. 신격호는 이때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1948년 6월28일 껌을 주 상품으로 하는 ‘주식회사 롯데’를 만들었고, 이후 한국에까지 진출해 현재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굴지의 재벌 가운데 하나로 키워냈다. 물론 이 글의 백미는 롯데가 1970년대 초 롯데호텔과 백화점을 만드는 시기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어떤 말도 안 되는 특혜를 받았는지를 기술하는 부분이니, 관심 있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는 이런 특혜의 명분으로 “신격호가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모은 외자를 모국에 투자해 잡아두려는 것”이라 설명했다고 한다.
최근 롯데를 둘러싼 한국 내의 여러 논란 속에서 불편함을 느낀 것은 재일 조선인(한국인)인 신격호 일가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었다. 손 명예교수는 이 책에서 1941년 일본에 건너온 신격호가 1946년 회사를 설립하기까지 “몇 번이나 기아선상을 헤매고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감내했을 것이다. 이 기간 그의 생활체험에서 오늘날 탐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을 그의 재산증식 욕구, 그리고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인 그의 양면성의 원점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오랫동안 신격호가 일본에 귀화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1994년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다 그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남겨두고 온 고향, 일본에서의 차별, 이를 극복한 성공, 군사정권과의 더러운 유착. 롯데는 재일 조선인을 둘러싼 이 복잡다단한 회색의 역사 속에서 가장 화려한 성공을 거둔 기업으로 기억돼 있다. 그리고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이 기업의 여러 전근대적인 구조는 앞으로 반드시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롯데를 만들고 경영해온 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한 한국인이 아니라, 한반도에 뿌리를 두긴 했지만 일본을 무대로 삶을 이어온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이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어눌한 한국어’와 ‘기업의 국적’ 같은 필연적 특성들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매우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한국 사회는 우리와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재일 조선인들에 대해 잘 모르고, 그래서 때로 초점이 엇나간 적대감을 드러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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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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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부회장의 한국어가 부족한 것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이고, 한국 롯데는 애초 일본 롯데가 투자해 만든 기업이다. 그게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라는 이번 사태의 본질과 무슨 관계일까.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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