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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05 19:29 수정 : 2013.12.06 10:09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중국이 이제 크지 않았느냐.”

최근 만난 한 중국 지식인은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비롯한 중국의 변화된 태도에 관한 이유를 묻는 물음에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일본은 중국의 안중에 없다. 중국은 부상하고 일본은 쇠퇴하고 있다. 그들이 뭐라건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를 두고서도 이런 설명을 이어갔다. “북한은 이제 중국이 국경을 접한 10여개 나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저히 그 가치가 떨어졌다. 중국은 말 그대로 강대국이 됐다.”

그의 말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듣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중국의 행보가 거침이 없다. 자국의 주권 안전을 위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은 주변 여러 나라들에 경각심을 일으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만나서도 “이건 우리 일이다. 지켜보시라”고 요구했다. “이미 19개 국가 50여개의 민간 항공사가 이 구역을 통과할 때 사전 비행계획을 내고 있다”고 기정사실화를 강조하는 발언도 잇따라 나온다.

‘도광양회’의 포장을 벗고 ‘대국굴기’로 치닫는 중국의 모습은 급성장한 국력만큼 주변국엔 위협으로 다가온다. 자신감 혹은 자만심으로 충만한 대국의 횡보는 덩치가 작은 나라들한텐 공포감까지 던진다. 10년 임기의 시 주석은 집권 1년차 만에 거침없이 ‘중국몽’(중국의 꿈), ‘부흥’, ‘해양강국’을 강조하며 중화민족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외신에선 “중국이 1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다. 하지만 이미 중국 지도부는 우려에 아랑곳없이 국력에 걸맞은 힘과 지위를 확보하려는 흐름에 몸을 실은 듯하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굴기하려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국이란 양대 세력 사이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는 물음을 강요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달 말 한-중 국방전략회담은 곤혹스러운 한국의 처지를 부각시켰다. 한국은 방공식별구역에 관한 중국의 전략적 양보를 기대했지만 중국은 예외가 없음을 확인했다. 이어도가 이 구역에 포함된 한국으로서도 당연한 요구였을 것이지만 불과 사흘 전 이 구역을 선포한 중국으로서도 어쩌면 답이 나와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중국이 일본과 그 너머 미국을 견제하려는 주요 목적을 띤 방공식별구역 논란 국면에서, 한국은 단숨에 주요 반대자로 주목받았다. 더구나 한국은 일본과 보조를 맞춰 방공식별구역을 통과하는 민간 항공기에 사전통보 거부 조처를 취했다. 미국보다 경직된 행보다. 참여 검토 선언을 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문제도, 애써 한국형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꾸리겠다며 거리를 두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 체제 참여 문제도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의 난제다. 중국은 티피피와 엠디 모두 중국을 겨냥한 경제 군사적 포위 전략의 일환이라고 경계한다. 최근엔 중국과 감청 공방을 벌이는 미국이 한국에 광대역 엘티이(LTE)망 구축 사업에서 중국 통신업체 장비를 쓰는 것에 우려를 전달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과 전통의 우방이란 원칙을 지키면서도 중국과의 우호관계 형성이라는 유연성을 통해 국익을 도모하는 것이 한국 외교가 안고 가야 할 태생적 ‘모순’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빙하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국은 원칙과 유연성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인간적으로 짙게 불신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때론 침묵으로 때론 원칙도 굽혀가며 교묘한 ‘불가근불가원’ 관계를 유지하며 집권에 성공한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지 궁금함과 우려가 교차한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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