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14 19:15
수정 : 2013.11.1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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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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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을 다니다 보면 중국의 허술한 풍경과 마주쳐 당혹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조금만 변두리로 나가면 허물어질 듯한 붉은 벽돌집들이 따개비처럼 붙은 농민공 마을들을 볼 수 있다. 맨 시멘트 바닥에 운동장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농민공 학교도 있다. 주변 갓 지은 최신식 마천루와 대비되는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소개소를 통하지 않으면 10위안이 더 싼 시간당 20위안(3500원)에 청소를 할 수 있으니 직접 연락해 달라”는 가정부 아주머니도 마주칠 수 있고, 허옇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길가에 모여앉아 탕과 짠지로 점심을 먹는 공사장 인부들도 만날 수 있다. 그 흔한 텔레비전이나 온열기도 없는 2평가량의 아파트 경비실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12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아파트 경비원도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자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무른다는 중국 서민들의 민낯이다.
수많은 기대와 추측을 낳았던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막을 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체제의 미래 10년을 좌우할 회의”,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가장 주목되는 3중전회”…. 어느 때보다 중국 안팎의 이목이 쏠린 회의였다.
관심은 국유기업 개혁이나 금융 개혁, 반부패 정책이라는 거대 의제 못지않게 사회 기층민들의 민생 대책에도 쏠렸다. 2억6000만이나 되는 유동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 농민공들의 생활고와 차별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가 지속가능한 운행을 하기 어려운 탓이다. 마침 3중전회를 앞두고 시진핑 주석이 후난성 산간벽지 마을을 찾아 유자를 따고 리커창 총리가 헤이룽장성의 농촌마을에서 트랙터에 오르는 등 지도부가 민생 행보를 하면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회의 뒤 <신화통신>에서 발표된 ‘3중전회 공보’에는 이들의 삶에 대한 개혁이 언급됐다. 3중전회가 선언적인 방향성만 밝히는 회의이고 구체적인 실천안은 다음달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하지만 5000여자짜리 공보에서 민생이 차지한 부분은 간략했다. ‘소득분배 개혁’, ‘농민의 토지권리 확대’, ‘도농간 공동 번영’, ‘기본 공공서비스 균등화’…. 종합선물세트처럼 대부분의 의제를 짚었지만 초라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4일 “후커우(호구) 제도 개선, 집값 폭등 등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기존 권력을 공고히 할 국가안전위원회와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에는 적지 않은 설명이 할애됐다. 일부 신문들에선 “이번 3중전회의 핵심은 시진핑 주석의 권력 강화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3중전회 폐막 당일인 12일만 해도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후커우 제도 개혁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보도하고, 당국이 30여년 묵은 한자녀정책 폐기를 암시했지만 회의가 끝난 뒤 관심은 이내 신설된 거대 기구들의 위상과 구성, 인사들에 대한 예측, 시진핑의 권력 장악 분석 기사로 옮아가 버렸다. 일부에선 “권력 강화와 민생 개혁을 맞바꾸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제도가 없는 중국에서 3중전회 결정은 정당 민주제 국가의 공약에 비길 수 있다. 관영 매체들은 “공보에 적게 언급됐어도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심대하다”고 했다. 곧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테니 좀더 기다려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중국 누리꾼은 “이번에 언급된 의제들은 과거에도 등장했던 것들이다”라고 냉소를 보냈다.
‘악마는 디테일(세부 사항)에 숨어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추상적인 민생 분야 결정사항 사이사이엔 실행 과정에서 기득권의 반발과 무관심이란 ‘악마’가 깃들 여지가 많아 보인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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