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24 18:50
수정 : 2013.10.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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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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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지금 추모 열기가 뜨겁다. 12월26일이면 출생 120돌을 맞는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과 지난 15일로 출생 100돌을 맞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친 시중쉰 전 부총리가 그 중심에 있다.
중국 민간에선 사실상 신과 같은 지위에 오른 듯해 보이는 마오 전 주석의 탄생 기념행사가 성대한 규모로 준비되고 있다. 그의 고향이자 중국 혁명 성지인 후난성 샹탄시 지방정부는 이미 19억여위안(약 3500억원)의 돈을 기념행사에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기념술도 출시됐다. 행사 책임자는 기념행사를 “지상 최대의 정치적 임무”라고 했다.
시중쉰 추모 기념 열기도 이에 못지않다. 15일엔 베이징의 중심 인민대회당에서 탄생 100돌 좌담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구름같이 몰렸다. 그의 사상과 연설·강연을 엮은 어록도 출판됐다. 관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그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저녁 황금시간대에 내보냈고 기념우표도 발행했다. 국가 최고지도자급인 주석이나 공산당 총서기, 총리 반열에 오르진 못했지만 살아 있는 최고권력의 아버지라는 배경 덕이 없지 않다.
두 개의 추모 기념행사가 품은 의미는 사뭇 달랐다. 모두 중국 건국 시대의 걸출한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이 추구한 길은 달랐다. ‘혁명의 순결성’을 추구한 마오쩌둥은 1960년대 중반 건국 10여년 만에 불평등이 깊어지고 자본주의적 사고가 번지는 중국의 ‘타락’에 스스로 이념 정변을 주도했다. 일부 홍위병들이 정지를 뜻하는 신호등의 빨간색조차 전진을 가리키는 진행의 의미로 바꾸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이념이 지배한 문화혁명이었다. 시중쉰은 이 시기 반혁명 분자로 낙인찍혀 16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덩샤오핑의 집권과 함께 복권된 그는 1970년대 후반 광둥성 서기를 맡아 개혁개방의 선구자 구실을 했다.
마오쩌둥 추모 행사는 이념을 중시하는 좌파가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 시중쉰 추모 행사는 실용을 중시하는 우파들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우파는 시진핑의 잇따른 마오주의식 정책 답습에 “시중쉰의 아들이 아닌 마오의 손자”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기념행사는 단순히 태어난 지 100년이나 더 된 개국 원로들에 대한 엄숙하고 박제된 추모가 아닌, 현재 중국의 살아 펄펄 뛰고 있는 이념·정치 투쟁의 무대인 셈이다. 집권 1년차인 시진핑 정부의 방향타를 제 편으로 돌리려는 치열한 여론전이 펼쳐지고 있다. 17일 열린 개혁파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출생 94돌 기념행사도 같은 맥락이다. 한 중국 정치 전문가는 “시 주석이 좌우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다”고 했다.
여야로 나뉘어 공개적으로 노선 논쟁을 벌이는 나라들과 달리 공산당 일당체제인 중국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가 종종 노선 논쟁의 공론장이 돼 왔다. 다수 중국인들이 ‘천안문 사태’(중국 당국의 통제 탓에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아는 중국 일반 시민들은 많지 않다)로 기억하는 1976년 1차 천안문 사태를 촉발한 저우언라이(1976년 1월8일 사망) 전 총리 추모가 그랬고, 1989년 6·4 천안문 사태의 도화선이 된 중국 자유파의 시조 후야오방(1989년 4월15일 사망) 전 총서기 추모가 그랬다. 군중은 ‘인륜지사’를 활용해 체제의 억압에 반발하고 민주화 요구를 분출했다. 중국 현대사의 물결도 함께 요동쳤다.
최근 중국의 추모 정국이 관심을 모으는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중국의 좌파와 우파는 모두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마오 탄생 120돌 기념행사를 시 주석의 향후 이념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으로 여기며 주시하고 있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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