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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0 19:11 수정 : 2013.10.10 19:11

도쿄/길윤형 특파원

지난달 도쿄에 부임하고 나서 제일 먼저 부닥친 문제는 내가 속한 ‘민족 공동체’를 어떻게 호칭해야 하는가였다. 최근 반한 시위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우익단체인 ‘재특회’의 정식 명칭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이다. 한국 언론들은 이때 ‘재일’을 보통 ‘재일 한국인’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그게 맞는 것일까.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44초 도쿄를 포함한 일본의 간토 지방에서는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겁에 질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는데, 이를 한국인 대학살로 불러도 맞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들은 한국이 조선반도를 대표하는 유일한 민족 공동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본다면, 한반도에는 1948년 8월15일에 건국해 1965년 6월22일 일본과 정식 수교를 한 대한민국이 있고, 1948년 9월9일 건국해 아직도 일본과 수교가 없으며 납치나 핵·미사일 등으로 자신들을 괴롭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 일본인들은 전자를 한국, 후자를 기타조선(북조선)이라 부른다. 또 일본엔 남북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일본에서 해방 이후 60여년을 버텨낸 자이니치(재일동포)들도 있다. 그래서 국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단군 이후 수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꾸준히 살아온 민족 공동체 전체를 지칭할 경우에는 아무래도 남쪽만을 지칭하는 한국인보다는 남북과 자이니치 모두를 포괄하는 조선인 또는 ‘코리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옳지 않나 싶다.

2007년 8월인가, 오사카에서 코리아엔지오센터라는 재일 조선인 시민단체를 이끌고 있는 김광민 사무국장을 만난 적이 있다. 몇해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를 분노하게 했다는 경험은 이러했다. 한국 국립국어원 관계자가 행사장에 나와 “최근 해외동포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이질화가 심화되고 있다”며 “표준어를 가르칠 수 있는 교원들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뭐가 문제일까. “한국 정부가 정한 표준어가 조선을 대표하는 유일한 언어라고 누가 정한 겁니까. 북조선에는 북조선 나름의 언어가 있고, 자이니치에게는 우리 나름의 문화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나름의 언어가 있고, 중국의 조선족에게도 그렇게 형성된 언어가 있는 것이죠. 모두가 다 같은 조선어이고, 다 같은 하나의 방언일 뿐이죠.” 그때 처음 조선인이라는 민족 공동체 안에서 한국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일종의 우월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물론 일본에서 ‘조센진’(조선인)이라는 말에는 멸시와 조롱의 느낌이 담겨 있다. 식민지 시대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장의 저임노동자가 되거나, 하천변에서 닭이나 돼지를 키워 파는 일이 전부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조선인은 일본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1931년 조선인의 일본어 가독률은 20.3%였다고 한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지 못하고, 육체적으로 너무 고될 때면 “아이고, 아이고”를 되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고치현에서 5년 동안 산 경험이 있는 김영환 평화박물관 활동가는 “시골의 한 할머니가 나를 보고 이렇게 깨끗한 조선인도 있냐”며 놀라더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조선인이란 단어에 대한 일본인들의 느낌은 대개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남아 지금의 성취를 이뤄낸 우리 민족의 역사가 난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말해본다. 그래 나는 조선인. 그게 뭐 어때?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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