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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2 19:04 수정 : 2013.09.12 19:04

박현 워싱턴 특파원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이용한 양민 학살 사건은 미국이라는 패권주의적 국가의 ‘인도적’ 군사개입이 정당하냐는 해묵은 딜레마를 국제사회에 안겼다.

독가스에 중독된 수많은 주검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과 고통에 못 이겨 펄쩍펄쩍 뛰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누구든 학살의 주범들을 응징하고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도덕적 압박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신성불가침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현재 국제규범으로는 자위권 행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승인이라는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불과 이틀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마지못해 시리아의 화학무기 폐기라는 러시아의 긴급 제안을 받아들여 안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안보리는 무기력했다. 또 이번 사건은 미국의 자위권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 과연 미국이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군사개입을 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이런 반인륜 범죄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능력에 근본적 한계가 있는 상황에선 정당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이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한 패권국가의 경제적·안보적 이익 추구 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몇 가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첫째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학살 주범이라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국제사회의 상당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 셋째는 먼저 외교적 노력을 최대한 경주하고 군사개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넷째는 군사개입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의 군사개입은 애초에 정당성을 상실했다. 아사드 정권이 학살을 자행한 정황증거는 있었으나 지시 주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증거가 없었다. 이라크전 때 ‘미국의 푸들’이란 오명까지 들었던 영국마저 참전을 거부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가 미미했다. 또 화학무기 폐기 방안이 수면 위에 떠오르게 한 계기가 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도 사실은 이 방안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지나치듯 말한 데에서도 잘 드러나듯, 외교적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군사개입은 ‘화약고’에 불을 댕기는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초 군사개입을 추진하며 이런 기준보다는 이른바 ‘미국 신뢰론’에 기댔다. ‘화학무기 사용은 레드라인(금지선)을 넘는 것’이라는 1년 전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행동으로 보여줘야 미국의 신뢰가 서고, 이번에 아사드 정권을 응징하지 않으면 또다시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며, 나아가 북한·이란 같은 국가들이 오판을 할 수 있다는 게 그 요지다. 한마디로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미국의 ‘소명’을 군사행동으로 보여줘야 국제질서가 바로잡힌다는 미국 중심의 세계관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말한 것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이를 액면 그대로 행동에 옮겨서는 안 된다. 오히려 미국의 신뢰는 말과 다르더라도 현명하게 행동해야 높아지는 것이다. 또 아사드 대통령이 ‘공격 땐 모든 것을 예상하라’고 말한 것에서 드러나듯이, 군사공격은 또 다른 보복 혹은 전쟁의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 북한과 이란을 걸고 들어간 것은 역사를 한참 잘못 본 것이다. 이라크전과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 때, 이들은 오히려 ‘핵이 없으면 미국한테 공격받는다’는 우려에 핵 야망을 더욱 키웠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숨가쁘게 진행된 이번 미국의 시리아 군사개입안 추진을 보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났지만 군사패권을 무기로 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행태는 여전하다는 점을 실감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대외정책에 관한 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미국 지도층의 유전자는 다르지 않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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