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8.22 19:04
수정 : 2013.08.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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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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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를 아십니까? 1968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시에서 일본인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한 뒤, 여관에서 13명의 투숙객을 인질로 잡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인 재일동포 말입니다. 그 사건으로 31년 가까이 복역한 그의 이야기가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그 이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출소 뒤 여생은 생부의 성을 따서 권희로로 살았지요.
7월31일부터 10월 말까지 도쿄 신주쿠 고려박물관에서 열리는 재일 사진가 고 김유의 사진전 포스터를 보다 문득 그가 떠올랐습니다. 1960~70년대 재일동포들의 삶을 기록한 사진 가운데, 지바현에 사는 한 여인이 도쿄에 행상을 나가려고 소부선 열차에 올라타려는 모습을 찍은 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인은 등에 3층으로 보따리를 지고, 손에 큰 보따리를 또 들고 있습니다. 넝마주이를 했다는 권희로의 어머니처럼 엉겅퀴 뿌리처럼 악착스럽게 살아야 했던 자이니치(재일 한국인을 일컫는 일본어)들의 모습입니다.
김희로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분노해 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사건 몇해 전인 1965년, 한국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했습니다. 그때 한국은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유상·무상 자금 6억달러를 일본한테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재일동포들의 법적 권리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그들을 버리다시피 했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계속 돌팔매질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지문날인 의무, 취업 차별 등 각종 차별에 맞서 수십년을 울며불며 싸워야 했습니다.
우리가 버린 게 재일동포만이 아니었습니다. 옛 일본군에 끌려가 죽고 다친 사람들, 징용돼 돈 한푼 못 받고 돌아온 사람들, 위안부로 동원돼 성노예로 산 이들, 시베리아와 사할린에 억류된 이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폭탄에 피폭된 사람들과 그의 자손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봅시다. 과연 대한민국은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다했는지. 식민지배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나라를 되찾아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물론 아주 늦게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조금씩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일도 많습니다. 원폭 피해 2세, 3세들이 대표적 존재입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가는 길이 수상합니다. 주변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배한 역사를 미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머지않아 군대를 보유하고, 외부를 향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일본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본이 그런 길을 가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지난날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비극의 재발을 막을 가장 강력한 힘은 ‘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나옵니다. 군사력에 맞서 군사력을 키우자는 대결주의가 아니라,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바로 그 힘의 원천일 것입니다.
독도를 방문해, 독도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신 것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엔 국회의원님들이 그보다 먼저 하셔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독도에 가시기 전에, 지금 국회에 제출된 원폭 후유증을 물려받은 2세, 3세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꼭 먼저 통과시켜 주십시오. 한국은 국민의 고통을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일본더러 해결하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들을 돌봐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감추고 미화하려는 일본과는 달리 과거사를 직시하고 비극을 망각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십시오. 그래야 ‘우경화 일본’을 비판하는 일이 더 정당성을 갖지 않겠습니까?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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