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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1 19:00 수정 : 2013.08.01 19:00

정남구 도쿄 특파원

엊그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인권기금’이란 단체에 우편물 발송을 도와주러 다녀온 아들이 그들의 활동을 보고 느끼는 바가 꽤 컸던 모양이다. 이 단체는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날’인 8월14일을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다. 아들은 많은 일본인 자원봉사자들이 과거 일본이 저지른 부끄러운 과거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게 뜻밖이었다며, 목소리에 열을 올렸다. 이 단체가 설립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의 안내책자를 보면, 자료관 운영을 돕는 회원 수만 1152명에 이른다.

3년여 전 도쿄에 특파원으로 부임하고 나서, 나도 놀랐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모임이 일본 전국 곳곳에 있고,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한일조약 문서 공개 소송을 돕는 모임, 원폭 피해자들을 돕는 모임, 한국인으로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전범이 돼버렸던 사람들을 돕는 모임, 역사왜곡 교과서 채택을 막기 위한 모임, 재일동포 양심수들의 명예회복을 돕는 모임 등 실로 수많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올해 들어 도쿄 신주쿠에서 우익집회가 벌어지는 날이면, 이들에 맞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수가 우익 시위대의 수를 능가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다.

그들의 활동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다. 시간을 쪼개고 자기 돈을 써야 할 뿐 아니라, 일본인 일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할 때도 많다. 그들은 매우 진지하고 정성스레 그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활동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견주면 한국에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최근 ‘우경화 일본’에 대한 커져가는 우려가 자칫 모든 일본인을 ‘일본’이란 이름 아래 뭉뚱그려 비판·비난하는 것으로 이어질까 두려워서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보수 우익 인사들로 가득 차버린 것은 사실이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처럼 인권에 대한 기본 소양조차 부족한 철없는 우익도 있다.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처럼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표출하는 식으로 자신의 좌절에 대한 위안을 찾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의 전부는 아니다.

일본 정치권을 보면, 소선거구제의 ‘마법’으로 보수 우익이 지지율에 견줘 엄청난 의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일본인 다수는 여전히 일본이 평화주의 노선을 버리는 것을 강하게 경계한다. 하시모토의 망언에 화를 낼 줄 알며,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어에 저항할 줄 안다. 일본이 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이들의 오랜 활동은 아직 힘을 다 잃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우리를 돕는 착한 일본인’으로 본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말한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 인류애로 연대하는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라고.

정치가들은 국민의 불만이 커질 때, 불만의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낸다. 한국·중국·일본의 정치가들이 요즘 그런 수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그들은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를 조장해, 모든 국민을 그 안에 일렬종대로 세우려고 한다. 국기가 올라가고 국가 앞에서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을 때, 평화와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가 ‘애국심’에 짓눌려 낮은 포복을 하게 되면 비극을 낳는다. 깨어 있는 이라면, 그것에 빨려들어가지 말아야 하며, 더욱이 그것을 조장하는 데 가담해서도 안 된다.

일본이 아시아 평화를 깨는 길로 전진하는 것은 우리로선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일본인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위축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이란 이름 아래 일본인을 싸잡아 적대시하곤 하는 우리 안의 경향을 우리도 억제해야 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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