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25 19:10
수정 : 2013.07.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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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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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 기층이 몸부림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돌발 사건들은 중국 발전의 이면을 보여준다.
20일 베이징의 관문 서우두 공항 3터미널에서는 농민공 출신인 지중싱씨가 폭발물을 터뜨렸다. 산둥성 출신인 그는 수년 전 중국 경제 중심지인 광둥성에서 오토바이를 개조한 2인승 택시를 몰았다. 사설 도시관리원인 청관에게 폭행당한 그는 하반신이 마비됐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동정과 공감을 보냈다. 6월엔 남부 푸젠성 샤먼시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한 남성이 버스에 불을 질러 40여명이 숨졌다. 그 역시 청관의 폭력적인 단속 탓에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처지였다.
노점상의 수난도 이어졌다. 17일 후난성에선 거리에서 수박을 떼다 팔던 50대 노점상이 청관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저울추에 맞아 숨졌다. 외신들은 이 사건을 아랍의 봄의 도화선이 된 무함마드 부아지지 사건에 견줬다. 부아지지는 2011년 튀니지 정부의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분신한 사람이다. 18일에도 헤이룽장성의 한 노점상이 청관에게 맞아 중태에 빠졌다. 영국 <가디언>은 22일 사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는 노점이 늘어나고 이를 단속하는 치안 당국 사이에서 빈번한 충돌은 가장 명확한 사회불안 지표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 마’ 범죄도 연이어 발생했다. 17일엔 시내 유명 백화점 앞에서 한 2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외국인 여성을 포함해 2명이 숨졌다. 22일에도 대형 할인마트 앞에서 한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여성 1명을 숨지게 하고 두살배기 아기를 중태에 빠뜨렸다.
중국 주류 언론들의 태도는 단호하다. <환구시보>는 연이틀 사설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용인하기 시작하면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며 동정론을 순진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최근 만난 한 중국인 교수는 “과거에도 이런 사건들은 빈번했다. 다만 최근 웨이보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해 더 많이 알려지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중국 공안당국은 돌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다수가 “정신병력이 있었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막다른 데로 몰아붙였는지는 생각해볼 거리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 중국 사회는 누구도 이들의 절박하고 곤궁한 처지를 묻지 않았다. 해마다 수많은 기층민들이 각 지방정부의 부당함과 이로 인한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상팡(上訪·베이징의 중앙정부에 직접 탄원을 제기하는 것)을 시도하지만 환상에 그칠 뿐이다. 불공평과 소외가 쌓이면 사람은 반발하고 이성을 잃기도 한다.
중국 지도부를 지배하는 관념은 여전히 안정과 경제 성장이다. 중국이 외교에서나 국내에서나 그토록 ‘안정’을 되뇌는 것도 일단 2020년 ‘소강사회’(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회)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불평등이나 돌발 변수를 가능한 한 통제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중국은 올해 우리 돈으로 140조원에 달하는 ‘사회안정 예산’을 책정했다. 국방비보다 489억위안이나 많은 돈이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는 별궁인 이화원 안에 곤명호(쿤밍후)를 파고 청안방(칭옌팡)이라는 돌로 만든 배를 만들었다. 그 어떤 민심의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권력에 대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외면한 희망은 망상에 그쳤다. 중국 지도부가 일련의 사건을 문제 있는 개인의 우발적인 행위로 치부할지, 극심한 빈부격차와 약자 외면 탓에 누적된 사회문제로 진단할지 지켜볼 일이다.
성연철 베이징 특파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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