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0 19:07
수정 : 2013.06.20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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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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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를 ‘자민당 노다파’ 사람이라고 했다. 이념 스펙트럼이 넓은 민주당 안에서 그는 가장 보수색이 짙었다. 그는 소비세 인상 등 민주당의 정체성에 반하는 여러 정책을 밀어붙였다. 2009년 8월 총선에서 45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냈던 민주당은 그의 지휘 아래 지난해 12월 총선거를 치렀고, 괴멸하다시피 했다. 이후 일본 정치의 얼굴은 보수정치의 부활을 넘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게 한다.
총선 결과는 일본 선거제도의 흠결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자민당은 지역구에서 전체 유권자 24.7%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으나 의석은 무려 79%(237석)를 차지했다. 비례대표를 포함해도 총 의석의 61.2%(480석 가운데 294석)를 차지했다. 투표율이 59.3%로 전후 최저인 상황에서, 소선거구 제도로 지지율이 높은 정당의 싹쓸이 현상이 두드러진 까닭이다.
총선 전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도 일본 정치의 어두운 측면이 보였다. 이시바 시게루 후보(전 정책조사회장)는 당원과 후원자, 소속 국회의원이 모두 참여한 1차 투표에서 전체 498표 가운데 199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과반수 득표자가 없자 국회의원만 참가한 가운데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1차 투표에서 141표에 그쳐 2위를 했던 아베 신조 후보가 여기서 이겼다. 정치인들이 민의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상 차기 총리가 될 총재를 결정한 것이었다.
아베 총리가 취임한 뒤 집권 자민당이 가는 길은 민의와 꽤 거리가 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뒤 일본인들은 절반 이상이 탈원전 정책을 요구한다. 원전 수출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당 정권은 원전 수출을 밀어붙이고, 멈춰 세운 원전의 재가동을 밀어붙일 태세다. 헌법 96조나 헌법 9조의 개정에도 국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는 참의원 선거 뒤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주창하는 개헌 내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는 헌법 9조를 고쳐, 일본을 합법적인 군대를 갖고 국제사회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나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론의 반대가 심하니 우선 헌법 개정 요건을 완화하는 96조 개헌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중·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개헌안 발의 요건을 2분의 1 이상으로 완화하자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헌법을 고치면, 일본 헌법은 법률과 똑같은 개정 절차를 갖춘 보기 드문 헌법이 된다. 이에 대해서도 반대가 많자 아베 총리는 9조와, 기본권 조항 등은 그대로 두고, 통치구조 등에 대해서만 개정안 발의 요건을 완화하자고 제안한다.
참의원 선거는 앞으로 한 달쯤 뒤 치러진다.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이 한자릿수에 그치는 상황에서 자민당의 압승은 떼논 당상처럼 보인다. 여러 정책에서 자민당에 반대하면서도, 일본 국민들은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이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를 혹시라도 살려내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거는 듯하다. 참의원 선거만 이기면 자민당 정권, 아베 정부는 꽤 오래갈 것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일본 국민 대다수는 아베노믹스에 의해 배반당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화완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다른 경제주체들은 수출기업에 사실상의 보조금을 몰아주고 있다. 소비세는 오를 텐데 법인세는 내려가고, 사회보장은 줄어들고 있다. 물가는 오를 텐데, 비정규직이 많은 상황에서 임금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 멀지 않아, 우리는 일본 민주주의의 진짜 위기를 보게 될지 모른다. 그것이 혹시 거울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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