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5.16 19:05
수정 : 2013.05.17 15:00
|
박현 워싱턴 특파원
|
[특파원 칼럼] 박현 워싱턴 특파원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이번 정상회담은 앞으로 4년간의 한-미 관계와 대북정책의 틀을 짜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상회담의 공과에 대한 기사는 정말로 단 한줄도 쓰지 못했다. 취재를 할 시간조차도 낼 수 없었다. 온종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현장을 뒤지거나, 문도 열어주지 않는 워싱턴 경찰서를 서성이기도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을 만나도 대화 주제는 온통 윤 전 대변인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것뿐이었다. 외교관들은 ‘취조’의 대상이거나 사건 내용을 알려주는 ‘형사’, 나는 ‘사건기자’였다. 아침에 일어나 취재 동선을 짤 때면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노와 함께 한숨만 나올 뿐이다.
취재를 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피해자인 여대생 지원요원과, 이 여성과 아픔을 함께했던 한국문화원 여직원이다. 정상회담의 공과는 이제부터라도 따져보면 되지만, 이 두 재미동포 2세 여성이 이번 사건으로 평생에 잊지 못할 상처를 입었을 것을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인 피해 여성은 재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번 행사에 3일 동안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미국에서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봉사를 하면서 성장을 한다. 봉사는 학생들에게는 사회에 눈을 뜨는 기회로 활용된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 전공이나 사회 진출 분야를 염두에 두고 해당 분야에서 봉사를 한다. 그게 입학이나 취업에서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여성은 한국과 관련한 일자리를 미래의 꿈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고 본다.
거기다가 고국에서 온 대통령을 돕는다는 기쁨도 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자원봉사자 모집에는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 관여한 한 인사는 “자원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고국의 대통령을 모신다는 것에 긍지를 가졌고 그래서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여성에게 준 것은 한 권력자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탈이었다. 이 여성은 이번 사건으로 다시는 한국 관련 일을 하지 않으려 할지도 모른다. 이 여성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재미동포 2세들도 이번 행사 때처럼 한국을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설지 의문이다. 결혼한 여성들의 커뮤니티인 ‘미씨유에스에이’ 게시판에는 자녀들을 이런 행사에 봉사자로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요지의 글들까지 올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대학을 나와 주미대사관의 홍보조직인 한국문화원에서 일해온 여직원은 벌써 사의를 표명한 뒤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8일 아침 울고 있는 피해 여성을 보호하며 상사들에게 외롭게 저항했다. 1년 안팎 한국 정부 조직에서 일했던 그는 그 절박한 순간에 ‘한국 정부’를 믿지 못하고 ‘미국 경찰’에 의지했다. 나는 그의 선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
한국의 권력자들은 이번에 미국에서 열심히 꿈을 일궈가는 재미동포 2세들을 농락했다. 과연 어떻게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기본을 갖춘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