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5 19:14
수정 : 2013.04.2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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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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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가 최근 들어 대화를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그러나 남북,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을 두고 서로 밀리지 않으려는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미 연합 군사연습이 이달 말 끝난 뒤 곧바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현재의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워싱턴에서도 최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동북아 순방을 계기로 해 북-미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정책결정기관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감지된다. 국무부는 전통적으로 대화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한데다 케리 장관의 입각으로 대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케리 장관은 동북아 순방 도중 동행기자단에게 1972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이뤘던 ‘닉슨-키신저 접근법’의 교훈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런 종류의 것(적과의 대화)에서는 약간의 리스크를 기꺼이 떠안는” 접근법이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북정책의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백악관은 이와 좀 다른 것 같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인 제이 카니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북한이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비핵화와 관련해 의미 있는 조처를 먼저 취해야 한다는 언급을 계속하고 있다.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이 먼저 변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오바마 1기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의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략적 인내 정책이 북한을 변화시키기는커녕 북한의 핵능력을 강화시키고 한반도 정세 악화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백악관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어느 정책결정자도 자신의 기존 정책이 잘못됐다고 자인하고 이를 바꾸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 정책의 잘잘못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백악관 외교안보팀 핵심은 1기 때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명한 행정부 고위 관료들에게서 이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의회는 오히려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처럼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미국 내 동포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백악관이 이란 핵개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외교적 개입을 하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관자적 태도를 취해온 것은 이런 외부의 압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대통령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오바마에게 얘기할 수 있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서도 오바마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 북한의 핵심 요구인 ‘체제 보장’은 미국이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반도 위기는 과거의 ‘반짝 위기’와 달리 상당히 구조화되는 양상이다. 한반도가 거의 ‘분쟁지역’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들은 한국 경제를 우려 섞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북핵을 빌미로 일본은 군국주의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이번 위기의 최대 피해는 한국 국민들이 입고 있는 셈이다. 책임 있는 지도자는 바로 이럴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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