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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10 19:14 수정 : 2013.01.10 19:14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새해 초부터 중국을 뒤흔든 <남방주말> 검열 사태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남방주말> 기자들이 쓴 ‘중국의 꿈, 헌정의 꿈’이란 신년사설은 꿈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물질의 풍성함만을 꿈꾸지 않으며, 국력의 강성만 꿈꾸지도 않는다. 우리는 국민의 존엄을 희망한다. 헌정(헌법에 기초한 정치)은 모든 아름다운 꿈의 기초다. 헌정을 실현해 권력을 제한하고 분산시키며, 국민들이 큰 소리로 공권력을 비판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내면의 신앙에 따라 자유롭게 생활해야 자유롭고 강대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 검열 당국은 수정 지시를 내렸다. 시간에 쫓기며 다섯 차례가 넘는 수정과 재수정 지시를 거쳐 결국 “위대한 부흥 실현은 근대 이래 중화민족의 가장 위대한 꿈이다. 새해의 출발점에 서서 우리는 어떤 시기보다도 이 꿈에 가까이 다가가 있다”는 글이 신년호 1면을 큼지막하게 장식했다.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글이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하는 시진핑 총서기를 의식한 ‘용비어천가’로 변했다.

언론을 ‘당의 선전 도구’로 규정하는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서 이런 검열은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남방주말 기자들은 침묵을 거부하고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이 사태를 폭로했고, 중국 사회 곳곳에서 언론 자유를 요구하고 남방주말을 지지하는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더이상 당의 통제에 겁을 먹은 채 권리를 포기해버리지 않는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거대한 연대의 물결을 이뤘다. 남방주말을 비난하는 사설을 실으라는 당국의 지시를 거부하다 사장이 사의를 밝혔지만, 폐간 위협 속에 사설을 싣고 눈물을 흘리는 <신경보> 기자들의 모습이 중국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중국 인기 여배우 야오천의 “진실 어린 말 한마디는 전세계보다 무겁다”는 남방주말 지지 선언에선 사회적 사안에 용기 있게 발언해온 배우 김여진씨가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방송사들로부터 출연 금지를 당한 한국의 현실도 겹쳐 보인다. 약자들의 자유와 권리는 애써 지키지 않으면 쉽게 빼앗기고 퇴보해 버리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용기 있는 연대를 통해 한발짝씩 나아간다.

중국인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남방주말을 지지하고 응원했는가? 금지의 선을 넘어 억울한 이들의 사연을 보도하고 이 때문에 탄압을 받아온 남방주말의 역사를 보면서, 중국인들은 ‘우리의 목소리’,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언론’을 지키고자 했다. ‘힘겨운 시대에 언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란 묵직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번 사태로 기득권층의 꿈과 사회 아래의 꿈이 점점 격렬하게 충돌하는 중국 사회의 민낯도 드러났다. 시진핑 지도부가 연일 강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관료주의 해소, 부의 공정한 분배와 빈부격차 축소,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소프트파워 등을 실현하려면 언론의 자유를 통한 감시 기능 강화가 절실하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권력과 돈을 독점한 현실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언론을 계속 통제하려 한다. 기득권의 꿈이 계속 사회를 장악하게 할 것인가, 힘없는 이들의 꿈을 한걸음 한걸음 실현해 갈 것인가. 남방주말을 지지한 중국인들의 열망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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