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2 19:27
수정 : 2012.11.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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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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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9일 미얀마에 6시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수만 명의 시민·학생들이 연도에 몰려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그를 환영하는 모습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었다는 것이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학창생활을 한 나로서는 상당수가 동원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으나, 어쨌든 오바마 대통령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백악관 관계자들은 전한다. 그는 반세기 동안 군부가 통치하고, 20년 이상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나라의 개혁을 지원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을 것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을 보낸 인도네시아와 풍광이 비슷하고, 그의 할아버지가 군대 생활을 한 곳이니 개인적인 감상에 젖어들었을 법도 하다.
오바마는 그곳, 미얀마에서 주목할 만한 대북 메시지를 던졌다. 미얀마처럼 개혁에 나서면 미국의 지원이 있을 것이니 북한을 향해 ‘미얀마의 길’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미얀마의 길이란 무엇인가. 개혁 주체는 과거 군사정권 내 실용주의 온건파이고, 핵심 내용은 정치적 자유의 확대와 경제 개혁·개방이다. 군복을 벗고 지난해 3월 대통령이 된 테인 세인은 20년 장기 집권한 탄 슈웨 전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과 군부 실세들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 해제와 양심수 석방, 선거 및 언론 자유 보장, 노조 합법화, 토지 개혁, 외국인 투자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갓 2년 된 미얀마의 개혁은 종족 분쟁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고,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중단될 수도 있는 미완의 것이지만 현재로선 성공 가능성이 커 보인다. 테인 세인 대통령이 군부 강경파와 거리 두기를 시도하면서 상당한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고, 야당과 시민사회세력의 영향력 확대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1987년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에 놀라 ‘6·29선언’을 한 한국의 군부세력이 이후 민주화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수치 여사로부터 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은 테인 세인 대통령은 유력한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미얀마의 길’이 지금 북한에서 가능할까. 두 나라는 지금까지 생존방식이 여러모로 유사하지만, 차이점 또한 뚜렷해 보인다. 북한의 경우, 젊은 지도자가 개혁을 하려 해도 권력 다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동력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고, 개혁을 압박해야 할 야당 세력이 내부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더 큰 차이는 세계의 마지막 냉전 지역에서 핵에 의존해 체제의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외부와의 대치는 내부의 개혁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오바마는 미얀마의 개혁 초기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개혁 조처가 상당 부분 진행된 뒤에야 지원에 나섰다. 이는 앞에서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뒤에서 밀어주는 오바마 외교정책의 특색이기도 하다. 미얀마의 길은 어쩌면 그의 이런 스타일에 꼭 맞는 사례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바마가 자신의 집권 기간에 북한의 개혁을 바란다면, 이와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가 4년 전 공약했던 ‘터프하고도 직접적인 외교’로 대치 상황을 완화·해소함으로써 북한의 개혁을 외부에서 추동하는 것이다.
박현 워싱턴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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