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25 19:11
수정 : 2012.10.2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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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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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언론의 서울 특파원들이 안철수 대선 후보의 승승장구를 일본의 ‘하시모토 현상’과 비슷하게 보는 기사를 여러 번 썼다. 떠오르는 제3세력이란 점은 같지만, 내 반응은 “에이, 그건 아니지”였다. 무엇보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하시모토는 극우파, 안철수는 중도진보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보니 내 눈에도 공통점이 조금 보인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을 전략무기로 쓴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새로운 정치는 기존 정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나아가, 그 정치를 담당하는 이들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고 그 가운데 표적을 잘 골라 멋지게 쓰러뜨리기까지 하면,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 지도자에게 환호하기 쉽다.
2010년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이 그런 정치를 잠시 선보인 적이 있다. 그는 주민세를 10% 깎고, 시의원 수와 이들의 급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획기적인 공약으로 당선했다. 그런데 기존 정당 중심의 시의원들이 이를 가로막았다. 그는 시의원을 공적으로 삼아, 주민소환 운동을 벌임으로써 결국 시의회를 해산했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한 수 위다. 그는 오사카부 지사가 되자 자신의 급여는 30%, 퇴직금은 절반으로 깎으면서 재정지출 삭감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기득권 수호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어 오사카 ‘부’와 ‘시’의 통합을 새 목표로 내걸었다. 그 효율성을 부정적으로 본 오사카 시장이 이번엔 표적이 되었다. 하시모토는 지사직을 내놓고, 시장 선거에 뛰어들어 이겼다. 그가 이끄는 지역정당 오사카유신회는 오사카 부의회에서는 과반 의석을 얻었고, 시의회에서는 제1당이 됐다. 그는 이를 발판으로 최근 ‘일본유신회’란 전국정당을 만들어 총선에 뛰어들기로 했다.
안철수 후보의 행보에도 하시모토와 비슷한 게 언뜻 비친다. 그는 기존 정치권을 국민에게 불신받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후보 단일화를 거론하기에 앞서 민주당의 혁신을 요구했다. 다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수와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을 줄이자’고까지 한 것은 너무 나간 듯하다. 정치 자체에 대해 불신을 조장하는 것은 표를 얻기에는 좋을 수 있겠지만, 나라를 생각하면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지지고 볶는’ 것이다. 정치에 민의가 얼마나 잘 반영되느냐가 중요하지, 그 과정의 경제성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는 이름만 대통령이고, 사실상 왕을 뽑는 시대를 오래 보내고 있다. 성군을 뽑는다고 민주주의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훌륭한 인격도 좋지만, 그보다는 옳은 비전과 정책, 실행능력이 오늘날 민주주의 지도자에겐 훨씬 중요하다. 미래지향적 지도자라면, 구체적인 정책대안에 몇 배 더 역점을 두는 게 맞다. 그것이 여론의 동의를 얻을 때, 집행을 가로막는 세력과 그들을 지탱하는 정치 제도를 바꿀 힘은 저절로 나온다.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에서 지워졌다. 나고야에 이렇다 할 혁신이 없어서다. 일본유신회는 지난여름,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현 집권당인 민주당을 웃돌 정도였지만, 한달여 만에 그 ‘하시모토 극장’은 아주 썰렁해졌다. 적을 무찌르는 것은 시원했는데, 국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막연해서라고들 한다. 선거전은 몇 달로 끝나지만, 국민의 삶은 오래 계속된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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