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18 19:25
수정 : 2012.10.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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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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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시대다. 경제위기로 삶이 점점 불안해지는 가운데 세계 곳곳에서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주장이 요란하다. ‘이대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전세계를 배회한다. 대선을 코앞에 둔 미국에서도 후보들은 부자 중심의 경제를 개혁하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치열한 토론을 벌인다. 한국 대선에서도 후보들은 모두 겉보기에는 비슷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개혁을 내놓고, 자신이 개혁의 적임자라고 외친다.
다음달 10년 만의 권력교체를 앞둔 중국에서도 개혁의 깃발은 어느 때보다 드높이 휘날린다. ‘개혁개방에서 후퇴하면 죽음의 길뿐이다’ ‘공산당은 민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약의 길은 민주정치에 있다’ 같은 글들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에 연일 등장하고 있다. 민간의 목소리도 대담해졌다. 중국 최대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의 창업자인 류촨즈 전 회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개혁은 일정 단계에 도달했지만, 정치개혁과 사회개혁이 완결되지 않으면 경제개혁도 계속해 나가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민영기업가인 그는 지도층의 부패와 권력투쟁을 드러낸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몇몇 관리들이 하는 짓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날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달 초 중추절·국경절 연휴 동안 고향에 다녀온 한 중국 친구는 “부모님은 지금 생활이 마오쩌둥 시기보다 못하다고 한탄했다”며 “그때는 국가가 집도 주고 직장도 줬는데, 지금은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위아래에서 변화의 요구가 들끓는다. ‘시진핑 시대’를 맞아 제대로 개혁을 해낼 수 있는가는 중국이 계속 순항할 것인가, 좌초할 것인가를 결정할 절체절명의 질문이 되고 있다.
그럼 어떤 개혁을 할 것인가? 중국이 ‘정치개혁 없는 경제발전’ 모델로 권력을 견제할 장치 없이 경제만 급속 성장시킨 결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성장의 과실을 독점하게 된 구조를 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영기업가들은 국영기업이 돈과 특권을 독점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국민들은 부의 공정한 분배, 복지, 집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원한다. 한국의 고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인 첸리췬 전 베이징대 교수를 만나 개혁의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진정한 개혁은 계속 미뤄지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루쉰의 글 한 구절을 꺼냈다. “이전에 부귀와 권세를 가졌던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며, 현재 부귀와 권세를 가진 사람은 현상을 유지하려 하고, 과거에도 지금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개혁을 하려 한다.”(<루쉰 전집> 3권 <소잡감>)
첸 교수는 “지금 중국의 개혁 논의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현재 부귀와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개혁을 할 이유가 없지만, 모두가 개혁을 요구하니 자기들도 개혁을 말하면서 기득권을 확대하려 하려 할 뿐 실제로는 절대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그는 “부귀와 권세를 갖지 못한 약자들, 노동자, 농민, 빈민들이 개혁의 동력이 될 때” 진정한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개혁 주장 속에서 ‘누구의 개혁이 진짜인가’를 가려내고, 지도자들이 말만 앞세우지 않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고 압박하며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은 중국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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