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5.03 19:28
수정 : 2012.05.03 19:28
|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
공포로 유지되는
표면적 안정 아래
사회적 문제들은
은폐되고 곪아간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 중국 인터넷에서 검색 금지어가 됐다. 억울하게 가택연금을 당해온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이 산둥성 둥스구촌에서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뒤, 중국 누리꾼들은 이 사건을 누명을 쓴 죄수의 탈옥을 그린 영화 <쇼생크 탈출>에 비유해 ‘둥스구 탈출’로 부르며 큰 관심을 보였다.
베이징은 영화 같은 봄을 보내고 있다. 보시라이 사건이 할리우드 영화를 압도하는 긴박한 스토리로 굳게 감춰져 있던 중국 권력의 이면을 폭로한 데 이어, 천광청의 탈출은 ‘안정이 최우선’이란 덫에 걸려 ‘경찰국가’로 변해버린 중국 사회의 현실을 드러냈다.
천광청은 탈출 뒤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에서 원자바오 총리를 향해 자신과 가족이 당한 일을 호소했다. “10여명이 몇시간 동안 아내를 마구 때려 왼쪽 광대뼈를 부러뜨렸으며, 촌 간부들은 어머님 생신에 어머니를 땅에 밀어 넘어뜨리고 문에 어머니의 머리를 마구 부딪쳤다… 그들은 ‘우리는 법 따위는 상관 안 한다’고 큰소리쳤다.” 천이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은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명목으로 지방관리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부패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관리들은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과 낙태수술을 시키고,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돈과 이권을 챙긴다. 중국은 이미 젊은 노동력이 줄어드는 상황이지만, ‘한 자녀 정책’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거대한 관료기구가 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관리들은 자신들에게 도전한 천광청에게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둔 뒤, 그가 출소하자 아예 그의 집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렸다. 시골의 작은 농가를 둘러싸고 거대한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곳곳에 세워졌다. 100명에 가까운 공안과 감시인들이 천의 가족들을 24시간 감시하고, 곳곳엔 폐회로카메라가 눈을 번득였다.
물론 이런 ‘물샐틈없는’ 감시망을 구축하려면 거액이 든다. 그 돈은 중국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천광청은 관리들로부터 자신을 감시하는 데 6000만위안(107억원)의 예산을 썼다는 말을 들었다며, “법을 어기는 지방관리들이 인민을 괴롭히고 당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데 납세자의 돈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천광청 감시’는 중국이 이견의 목소리를 통제하려고 사회 곳곳에 짜놓은 거대한 감시망의 극히 일부분이다. 중국이 올해 공안·국내안보에 설정한 예산은 7018억위안이다. ‘군사대국화’ 논란을 부르고 있는 국방예산 6703억위안보다도 훨씬 큰 액수다. 중국은 ‘안정이 최우선’이란 강박 속에서 내부와 싸우고 있다. 공안과 무장경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공포로 유지되는 표면적 안정 아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은폐되고 점점 더 곪아간다.
이런 구조는 19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 유혈진압 이후 형성된 ‘중국모델’의 일부다. 딩쉐량 홍콩과기대 교수는 “천안문 사태로 통치집단의 정치신화가 파괴되자 중국 지도부는 정권 유지를 위해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사회적 감시를 대폭 강화했다”고 지적한다. 동독 붕괴 직전 악명 높은 비밀경찰 슈타지가 전 인구의 1.5%를 정보원으로 활용했던 데 비해, 현재 중국은 인구의 3%를 직간접적 정보·감시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 아울러 정권 유지에 중요한 집단에는 더 큰 특혜와 부를 주고 힘없는 계층에는 부가 돌아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는 심각한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1989년 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술해, 부의 분배구조를 바꾸고 농민·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하고, 권력을 감독할 시스템을 만들지 않는다면 성장의 한계는 점점 뚜렷해질 것이다. 중국이 스스로 만들어낸 거대한 장벽을 탈출해 새 길로 달려나갈 수 있을까? 천광청이 던지는 질문이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