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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6 19:14 수정 : 2012.04.26 19:14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미국과 달리
정부와 언론이
불신받는 한국에서
‘괴담’은 잘 자란다

24일(현지시각) 미국에서 4번째 광우병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분위기는 너무 차분해 의외다.

미국 신문들은 하나의 뉴스를 몇 개 면에 걸쳐 보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긴 하지만 25일 조간신문을 보면, <뉴욕 타임스>는 본면에 관련 기사가 없고, <워싱턴 포스트>는 2면 1단 기사로, <월스트리트 저널>은 3면에 ‘광우병 발견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제목의 해설기사를 쓰는 정도였다. 이때 ‘공포’란 ‘광우병 발생으로 인한 쇠고기 수출 급감 우려’를 말한 것으로, 특히 한국과 일본이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까봐 걱정하는 기사였다. 구글이나 야후의 뉴스난에도 광우병 보도는 주요 뉴스로 첫 화면에 올라 있지 않아, 관련 보도를 찾으려면 ‘매드 카우’(mad cow)라는 단어를 넣어 검색해야 했다. 또 광우병 뉴스는 대부분 “미 쇠고기 안전”, “검역시스템 제대로 작동” 등 미 농무부 발표가 바탕이었다. 극히 일부 기사만 “과연 검역시스템에 아무 문제가 없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뿐이다.

기자로서 농무부의 제한된 발표에 여러 궁금증이 인다. 특히 ‘문제의 소가 샘플 테스트에 걸리지 않고 유통될 가능성은 없었는가’ 하는 점과 ‘광우병에 걸린 소들이 샘플 테스트에 걸리지 않고 유통됐을 가능성은 없었는가’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 광우병 전수조사를 하는 일본에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발견된 광우병 소는 모두 36마리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연평균 도축 소는 104만마리 정도다. 미국에서 한 해 도축되는 소는 3400만마리로 일본의 32배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이런 우려는 찾기 힘들다. 시카고 선물시장에서 ‘광우병 루머’가 돌면서 소값이 장중 한때 10개월 만의 최저치로 급락했으나, 미 정부의 공식 발표 뒤 곧바로 반등했다. 맥도널드 등의 주가도 마찬가지고, 쇠고기 판매가 중단되거나 햄버거 매장이 썰렁해지는 현상도 없다. 아마 상당수 미국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것이다. 마치 미국 전체 사회가 광우병에 대해선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는 100여명이 광우병으로 숨진 유럽, 광우병 파동으로 사회적 격변을 겪었던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광우병 트라우마’가 거의 없는 게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 정부는 “광우병은 과학의 문제”라며 한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인들도 ‘광우병 논문’을 읽고 나서 이런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이런 반응의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인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광우병 발생과 관련해 “미 광우병 발생 땐 즉각 수입중단 하겠다”는 2008년 약속에 대한 거짓말 논란에 또 직면했다. 현시점에서 다른 어느 나라도 수입중단을 않는데, 한국만 도드라지게 수입중단을 선언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광우병 발생은 또한번 이명박 정부를 ‘거짓말’과 짝짓게 만들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 천안함 사건, 민간인 사찰 파동, 최근 귀갓길 여성 피살사건에 대한 112의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정부 당국의 거짓말이 이 정부만큼 만연했던 적이 1990년대 이래 드물었던 것 같다. ‘괴담’이 만연한 게 꼭 반엠비(MB) 세력의 정치적 목적 때문일까? 정부와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땅에서 ‘괴담’은 잘 자란다. 이명박 정부는 얼기설기 이 위기를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정부가 그때 거짓말했구나’라는 생각을 더하게 됐다. 어차피 수명이 다한 정부지만, 이는 다음 정부에도 짐이 된다.

그러고선 또 “봐라, 광우병이 발생한 미국도 조용한데, 우린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국민들 오해’ 노래를 부를 텐가?

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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