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12 19:19
수정 : 2012.04.1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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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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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정치
모두 아래로부터의
갈망에 응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섰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세대라면 누구도 그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겁니다. 보시라이 자신도 실은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2의 마오쩌둥’ 이미지로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가 몰락한 뒤, 중국 친구들과의 대화에선 문화대혁명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토론하는 일이 많아졌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달 보시라이의 반성을 촉구하면서 “정치개혁이 없으면 문화대혁명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보시라이는 ‘제2의 마오쩌둥’이며, 보시라이의 정치는 ‘제2의 문화대혁명’이라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보시라이의 부인이자 유명 변호사였던 구카이라이가 영국인 사업가를 독살한 혐의로 체포되고, 보시라이 자신도 공산당 당직을 박탈당한 채 조사를 받고 있다. 보시라이를 숙청한 이들은 이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민들을 향해 ‘보시라이에 대한 환상을 깨고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한쪽에선 ‘위험인물’로 지탄받는 보시라이가 왜 한때 ‘영웅’이 되었는가? 수십년간 계속된 휘황한 두자릿수 성장의 결실에서 소외된 이들,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부패와 빈부격차에 분노하는 이들, 특권층에 밀려 기회를 박탈당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보시라이가 내건 정책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지도부는 ‘조화사회’ 이념을 내걸고 공정한 성장을 약속했지만, 오랫동안 변화는 오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중국인들이 권력·부·권리·기회가 소수에만 집중되는 현실에 실망하고 분노했다. 보시라이는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며 대대적으로 ‘범죄와의 전쟁’과 혁명가요 부르기 캠페인을 벌였고, ‘평등했던 마오의 시절’이 다시 오게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선전했다.
이제, 보시라이가 중국의 대안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군중을 동원하려 했을 뿐 시민의 권리와 사회의 힘을 강화할 뜻이 없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민생을 강조하는 정책을 내걸었지만, 독재적인 방법으로 시민의 재산을 빼앗고 자신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억압했다. 과거를 빌려 권력과 이익을 추구한 그의 계획은 결국 좌초하면서 중국 정치 시스템을 뒤흔드는 중이다.
중국이 한창 ‘마오의 유령’과 씨름하고 있다면, 한국은 ‘박정희의 유령’과 다시 만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 총선의 ‘승자’로 화려하게 등극한 것을 새삼 얘기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국민들이 제기했던 변화의 열망과 과제는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대안을 주지 못한 퇴행의 정치를 다시 돌아볼 시간이다. 힘겹게 얻은 민주화의 성과를 당연시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정권이 정부기관을 내세워 민간인을 사찰하고 겁주게 될 정도로 타락한 정치를 보았다. 국민들의 분배와 공정에 대한 요구를 포퓰리즘으로 비웃고 냉전적 구도와 색깔론으로 선거를 끌고 온 권력과 언론도 보았다. ‘정권 심판론’에 기대 승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리싸움에 집착해 국민들 앞에 희망의 대답을 내놓는 것은 잊어버린 답답한 야권의 현실도 보았다. 대안을 내놓으려는 노력 없는 ‘심판론’으로는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중국에서 희망은 사회 밑바닥에서 권리를 찾으려 일어서고 있는 농민과 노동자들, 농촌 공동체를 만들고 노동 현장을 바꾸려는 움직임, 대학생들과 농민·노동자의 연대에서 싹트고 있다. 한국에서도 선거 전 분출했던 빈부격차와 재벌 독점에 대한 비판, 비정규직과 농민들의 각성, 일자리를 요구하는 젊은이들의 갈망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한국과 중국 정치 모두 이들을 향해 응답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 있다. 현재의 정치가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면 음울한 과거의 유령이 되살아난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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