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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1 19:50 수정 : 2012.03.01 19:50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거리와 집들은
허름했지만
유토피아의
공기가 감돌았다

솔직히,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중국 남쪽 끝 바닷가 마을 우칸. 중국 친구들은 그곳을 ‘혁명의 땅’이라 부른다. 한 중국 지식인은 “밤마다 인터넷으로 우칸 소식을 찾아본 뒤 잠든다”고 했다. 변화에 목마른 중국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 작은 마을.

지난달 21일 아침 광둥성 선전에서 버스를 탔다. 중국을 대표하는 화려한 대도시 변두리의 허름한 버스 정류장 앞, 신문 파는 아저씨가 내민 <남방도시보> 1면 머리기사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만드는 폭스콘이 농민공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임금도 올려주기로 했다는 기사다. 선전의 폭스콘 공장은 50만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폭스콘 시티’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 가장 먼저 부자가 된 광둥에선 변화가 꿈틀댄다. 젊은 노동자들은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저임금 노동을 참지 않는다. 물가도 싸고 가족과도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찾는다. 광둥의 노동력 부족은 되돌리기 힘든 흐름이다. 파업 물결도 거세다. 2010년 여름 중국 노동자들의 강력한 조직력과 단결을 보여줬던 혼다자동차 파업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중국에서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한 광둥의 기운이 귀향 노동자들을 따라 중국 전역으로 퍼진다.

흐린 하늘 아래 버스는 달린다. 소도시 곳곳까지 들어선 아파트와 별장들을 지나 3시간 넘게 달려, 우칸이다. 거리와 집들은 허름했지만 사람들에게선 유토피아의 공기가 감돌았다. 부정부패한 관리들이 수십년 동안 주민들 몰래 팔아버린 마을 땅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시위가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켰다.

탐관오리들을 쫓아내고 민주선거를 통해 믿을 수 있는 촌위원회를 구성해, 빼앗긴 땅을 되찾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이들을 두려움 없는 민주운동가로 만들고 있다. 공안에 붙잡혀 간 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시위지도자 쉐진보의 딸인 21살 쉐젠완은 3일 치러지는 촌위원회 선거에 나섰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는 얼마 전 학교를 그만뒀다. “우칸 토지를 돌려받겠다는, 아버지가 못다 이룬 뜻을 이루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주민들은 똘똘 뭉쳐 외부에서 찾아오는 취재진과 운동가들에게 우칸의 사연을 알린다. 마을의 젊은 지도자들은 새벽까지 함께 모여 차와 맥주를 마시며 선거와 토지 문제를 논의한다.

촌위원회 선거에 출마한 22명의 후보가 2월29일 수천명의 유권자들 앞에서 유세하는 장면은 1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뒤덮었다. 누리꾼들은 유세 장면과 함께 ‘우칸이 중국에 민주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우칸은 민주의 작은 불씨’ ‘우칸에 축복을’ 같은 글을 올려 환호한다. 중국 정부는 시위 주민들에게 양보해 요구를 수용한 ‘우칸모델’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지만, 우칸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열망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1949년 중국 공산혁명이 농민혁명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오랫동안 침묵하던 농민과 농민공 노동자들이 변화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 고도성장 마법의 두 축인, 전세계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는 농민공 노동력을 이용한 수출산업과 농민들의 목숨과 다름없는 땅을 헐값에 또는 공짜로 빼앗아 공장과 고급 별장 등으로 개발해온 발전모델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 지도부도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변화가 하루아침에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오랜 절망이 변화의 싹으로 자라고 있다. ‘1 대 99 세상’에 분노하는 한국과 유럽, 중동과 미국의 비정규직, 실업자, 영세상인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와 우칸은, 실은, 하나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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