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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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누리는 그들,
세금 많이 내고
좀 촌스럽지만
편안함이 느껴진다
출장 또는 관광으로 캐나다를 방문할 때마다, 미국에 비해 뭔가 촌스럽다는 게 솔직한 느낌이다. 토론토나 밴쿠버 등 높은 빌딩이 우뚝 솟은 대도시에서도 사람들의 꾸밈새는 수수하기만 하다.
캐나다에서 또 하나 체감하는 것은 비싼 물가다. 미국에서 서브웨이 햄버거와 콜라 세트를 시키면 6달러 남짓이면 되지만, 캐나다에선 9달러를 줘야 한다. 거의 모든 상품이 미국보다 비싸다. 미국에선 5% 정도인 상품세가 캐나다에선 12~15%(통합상품세)나 붙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미국과 가장 크게 대조되는 건 이런 ‘촌스러움’과 ‘비싼 물가’가 아니라 높은 세금과 사회보장제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을 주창하면서 가장 많이 든 사례가 ‘캐나다’였다. 캐나다에선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이 시행되고 있으며, 보험료도 4인 가족 기준으로 대략 월 100~150달러 정도만 내면 모든 의료비가 무료다. 민간보험사가 주축인 미국의 경우 보험료는 캐나다의 8~10배, 그 비싼 보험료를 물고도 병원 가면 또 돈을 내야 하니 오바마로선 캐나다가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미국에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대학 등록금도 캐나다에선 학기당 4000~5500달러 정도로 미국보단 훨씬 싸다.
그렇다면 캐나다는 ‘지상낙원’인가? 속내를 들여다보면 캐나다 제도에도 문제가 많다. 지난 연말 칼레 라슨 <애드버스터스> 편집장을 인터뷰하려고 밴쿠버를 찾았을 때, 공항에서 탄 택시에서 기사와 캐나다의 복지 시스템에 대해 얘기하면서 ‘캐나다가 미국보다 낫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그 기사는 대체로 수긍하면서도 다소 냉소적이었다. “미국은 비싸고, 캐나다는 끝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마다 예약환자가 밀려 보통 두 달은 기다려야 의사 얼굴을 볼 수 있고, 그래서 기다리다 낫기도 하고 반대로 죽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사는 “안 기다리려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민간 고급병원(private)을 가야 하는데, 이는 미국만큼 비싸다”고 못을 박았다.
캐나다 이민자인 내 친구는 아내가 어깨 근육을 다쳐 수술을 해야 했으나, 넉 달을 기다리라는 말을 듣고 한국에 가서 수술을 받고 돌아왔다. 또 일부의 예일수도 있겠지만, 캐나다 의사들 중에는 ‘돌팔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역시 캐나다로 이민 온 한 선배는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탈장이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 수술 날짜를 받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의사인 친구가 보더니 “아닌 것 같다. 엑스레이를 한번 찍어보라”고 권유했다. 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다. 멀쩡한 배를 가를 뻔했다. 캐나다는 의료비를 낮추기 위해 보험수가를 높이지 않으려 애쓰고, 그 때문에 실력 있는 의사들은 민간 병원으로 빠지거나, 돈 되는 미국에 가서 개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캐나다는 젊은층 ‘일자리’가 없기로 유명하다. 실업률은 경기가 좋을 때도 늘 7~8%다. 일본, 한국, 동남아 등의 영어강사 중에 캐나다인이 유달리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세금과 규제가 많다 보니 장사를 해도 큰돈 벌기는 쉽지 않다. ‘세금 해방일’이 지난해의 경우 미국은 4월12일인데, 캐나다는 6월5일이니, 번 돈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한국은 지난해 3월18일). 캐나다 사람들이 촌스러운 이유다. 자, 그렇다면 남은 건 ‘선택’이다. 캐나다처럼 복지혜택 누리며 살려면 세금 많이 내고, 좀 불편해야 하고, 좀 촌스러워져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한국에서 정당마다 내놓는 장밋빛 복지정책이 눈부시다. 하지만 ‘돈 안 내는 유토피아 복지국가’는 이 땅엔 없다. 캐나다에서 내가 느끼는 또다른 것 하나는,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뭔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보장성 보험이 잘 안 팔린다. 의료비는 공짜이고, 은퇴하면 연금으로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 좀더 잘 입고, 잘 먹지만, 24시간 매장이 늘어나는 미국에선 그 ‘편안함’이 점점 희미해진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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