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1.26 18:36
수정 : 2012.01.2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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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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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비참한 점은
혼자 힘으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하시모토 시장의 인기
일본 정치판에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요즘 뜨고 있다. 지방의원뿐인 지역정당(오사카유신회)을 이끌고 있지만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지난주 <산케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총리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로 그를 꼽은 사람이 21.4%나 됐다. 압도적인 1위다. 2008년 1월 오사카부 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에 입문한 지 4년 만의 일이다.
일본인들은 기존 정치 문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옛 정치인들에게는 아주 식상함을 느끼는 모양이다.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뒤 벌써 세 명의 총리가 나왔는데, 지지율의 추이는 한결같다. 정권이 출범할 때면 60~70%대에 이르다가, 서너달이 지나면 30%대로 추락한다. 궂은일을 묵묵히 해나가겠다는 ‘미꾸라지 총리론’을 내세운 노다 요시히코 현 총리도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일본인들에겐 현실이 답답하긴 할 것이다. 20년째 경제가 시원찮은 가운데 소득 격차는 커지고, 빈곤과 자살이 늘고, 기업들은 자꾸 일본을 떠난다. 지난해 3·11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또 큰 지진이 올 것이라고들 한다. 일본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지금 ‘재해 방지’다. 꿈을 꿀 여유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제대로 해결 못하는 기존 정치인들에 견주면, 하시모토 시장은 확실히 다르다.
집 나간 아버지(차별받던 ‘부락민’ 출신의 폭력단 조직원으로 알려져 있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목숨을 끊어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변호사가 되고 방송인이 된 성공담, 저출산 사회에서 3남4녀의 아버지라는 점은 좋은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을 진정으로 매료시키는 것은 발군의 추진력이다. 그는 자신의 급여를 30%, 퇴직금의 절반을 깎으면서 오사카부의 재정지출 삭감을 추진했다. 의회가 협조하지 않자, 새로 지역정당을 만들어 과반 의석을 차지해 무찔렀다. 오사카부와 오사카시의 대통합 추진에 오사카시가 협조하지 않자 이번에는 지사직을 버리고 시장에 출마해 당선했다. 그는 오사카도를 만든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지금 일본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재라고 불릴 정도의 힘”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상반된다. 내가 만난 일본의 지식인 가운데는 그의 행보를 심각하게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의 정치이념과 정책 때문이다. 그는 교육에서는 경쟁을 통한 학력향상을 중시한다. 재정 개혁은 공무원 급여 삭감을 몰아붙이는 방향으로 추진했다. 자치단체장인 까닭에 국가운영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았으나, “일본이 가장 비참한 점은 혼자 힘으로 전쟁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징병제의 부활과 핵무기 보유를 긍정했다. 공립학교 행사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할 때 일어서지 않는 교원을 파면까지 하는 조례를 일본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하시모토의 정치 수완은 2001~2006년 사이 장기집권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생각나게 한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선을 만들어 반대파를 고립시키는 데 하시모토도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보수우파들은 그에게 적극 손을 내밀고 있다. 그의 인기를 등에 업는다면 순식간에 집권도 가능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그것이 일본의 당면과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길로 보이진 않는다. 민주당 정부는 아시아에서 고립을 각오하고 미-일 동맹 강화의 길로 확실히 방향을 틀었다. 하시모토는 그 위에 ‘애국주의’와 ‘시장경쟁 만능주의’라는 낡은 옷을 껴입으려 하고 있다. 일본이 오랜 우울증을 앓더니 판단력까지 아주 흐려져 버린 것 같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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