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4 19:32
수정 : 2011.11.24 19:32
|
정남구 도쿄 특파원
|
저 폭력적인 성장지상주의를
대체할, 공존의 성장 비전이 있나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말부터 수입 유제품에 특별긴급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능 오염이 퍼지면서 외국산 유제품 수입이 4~6월 사이 급증하자 국내 낙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수입가격의 29.8%에 1㎏당 1023엔을 더 매기던 버터 관세는 이 조처로 내년 3월 말까지 가격의 39.7%에 1㎏당 1364엔으로 올랐다. 일본인들은 이를 공존을 위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낙농가들은 요즘 바늘방석에 앉아 있다.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교섭에 참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농산물에도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목적으로 하는 이 협정에 일본이 참가하면,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낙농산업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버터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은 유제품에 대해 200%가 넘는 실질관세를 물리고 있다. 일본유업협회는 관세가 폐지될 경우, 2009년 2조1785억엔이던 유제품 생산액이 31.7%나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우에다 후미오 시장이 지난 8일 전국의 시장 가운데 처음으로 “티피피 교섭 참가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데엔 이런 사정이 있다.
남쪽 끝 오키나와의 사정은 더욱 절박하다. 오키나와는 관광이 거의 유일한 산업이다. 하지만 관광은 계절을 타는 까닭에 이것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그래서 오키나와 전체 가구의 70%가 사탕수수를 재배한다.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수입 설탕에 379%나 되는 관세를 매기고 있다. 일본이 티피피에 참가해 설탕 관세가 없어지면, 오키나와는 어찌될 것인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선 제조업도 안 된다. 태풍과 가뭄이 잦아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도 어렵다. 오키나와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임금이 낮고, 실업률이 높고, 가난하다.
일본에서도 티피피에 참가하면 나라 경제가 망할 것이란 주장이 있다. 하지만 서로 시장을 개방하기로 하는 협정을 두고 어느 한쪽만 이득을 본다는 생각은 그리 합리적인 것 같지 않다. 이익이 한쪽에 더 쏠리는 경우는 있겠으나, 양자 모두 득을 보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어느 나라에서든 그것으로 이득을 보는 자와 손실을 보는 자가 갈린다는 점이다. 대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본이 오랫동안 자유무역협정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쌀과 오키나와의 설탕, 홋카이도의 유제품 생산 농가에 대해 희생을 강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이 마침내 한-미 자유무역협정보다 더 높은 개방을 추구하는 티피피 참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재계는 한국이 유럽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자 정부에 더욱 압력을 넣고 있다. 일본이 티피피로 쫓아오려 하자, 한국의 추진파는 더욱 속도를 낸다. ‘나쁜 경쟁’의 악순환이다.
티피피로 인한 성장 효과가 매우 미약한데도,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는 교섭 참가 찬성이 반대보다 꽤 많다. 사람들은 성장이 지지부진한 경제에 무언가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급격한 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나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에게는 정부가 적당히 대안을 제시해줄 것이라고 건너짚는다. 그렇게 연대가 깨어진 틈을, ‘충격 개방’이란 폭력이 치고 들어올 태세다.
우리나라에선 한나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결국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분노하면서도, 자괴감을 느낀다. 한국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찬성이 많았다. 사람들의 생각에서 저 폭력적인 성장지상주의를 지워내고 그것을 대체할, 공존의 성장 비전을 과연 우리는 제대로 갖고 있는가. 돌아봐야 한다.
jej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