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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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언론들은
첫 중국계 로크 대사가
‘신식민주의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얼마 전 베이징 외교가 건널목. 점심식사를 하러 나온 인파 속에서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다. 눈에 띄는 경호도 없이,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걸어가는 모습이 확실히 ‘튄다’.
지난 8월 첫 중국계 미국대사로 중국에 온 그는 중국 서민들의 ‘스타’다. 화교 3세로 뤄자후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불리는 그의 소탈한 행보에 중국인들은 열광한다. 중국으로 부임하는 길에 공항에서 할인권으로 커피를 사고, 가족과 함께 직접 짐을 들고 입국하고, 만리장성에 가서 귀빈 대접을 받는 대신 1시간 동안 줄을 서서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이코노미석을 타고 출장을 다니는 일거수일투족이 뜨거운 화제가 됐다. 이달 초 로크 대사가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던 광둥성의 농촌 마을인 지룽을 방문하는 길에는 환영 인파가 몰렸다.
서민들의 ‘뤄자후이 열풍’과는 달리, 중국 당국과 관영언론들의 반응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광명일보>는 지난 9월 로크 대사의 친서민 행보는 “신식민주의”에서 나온 것이라며, “미국이 로크 대사를 임명한 것은 중국인을 이용해 중국인들을 통제하고 중국에 정치적 혼란을 선동하려는 야비한 의도”라고 비난했다. 지난주 로크 대사의 광둥성 ‘뿌리 찾기’ 방문을 취재했던 중국 기자들은 공산당 선전부로부터 떠들썩하게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왕양 광둥성 당서기는 로크 대사를 기다리면서 “그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다. 그가 미국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경계심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향해 ‘신식민주의’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두둑해진 자금력을 앞세워 아프리카와 남미 각국에서 자원을 확보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을 ‘신식민주의’라고 비난해 왔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로크 대사가 미국식 가치관을 선전하면서 중국 지도부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감을 일으키려는 미국의 계략에 따라 ‘신식민주의적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국 서민들이 로크 대사의 소탈한 모습을 보며, 황제 같은 특권을 누리고 인민들이 가까이할 수 없는 존재인 중국 지도부와의 거리감을 확인하는 데 대한 불안감이다.
지도부 인선은 물론 주요 정책이 모두 막후에서 결정되는 중국에서 일반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통로가 없는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좌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 최고위층에선 내년 공산당 18차 당대회를 앞두고 차기 지도부 구성과 새 정책 방향에 대한 치열한 경쟁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민들은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다. 국민들의 선택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관영언론에는 한줄의 보도도 나오지 않는다.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이라는 난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내고 눈부신 경제 성과를 이룩했지만, 정치개혁이라는 중요한 과제 앞에서는 계속 주춤거리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불투명하고 권위적·고압적인 중국이 너무 급속하게 강대해지는 것을 우려하는 ‘중국위협론’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안보·경제 영향력을 두고 다시 일합을 겨루기 시작하면서, 아시아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듯 요동칠 판국이다. 미국은 ‘중국위협론’을 이용해 아시아에서 군사적 활동을 강화하고 시장을 확대하려 한다. 중국에선 ‘미국위협론’이 퍼지고 ‘서구식 민주주의’는 미국 제국주의의 사주이기 때문에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서구식 민주’를 반대한다면, 부정부패, 불평등, 국가와 국유기업의 결탁, 사회적 목소리의 부재, 기회와 복지를 빼앗긴 저소득층의 박탈감을 해소할 진정한 민주적 대안 모델을 제시한다면 어떨까.
중국위협론과 미국위협론의 대결 대신, ‘중국식 민주’와 ‘미국식 민주’의 경쟁을 보고 싶다.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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