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10.27 19:30 수정 : 2011.11.21 15:03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험이 성공한다면

중국에서 가장 경제가 발달한 장쑤성의 북쪽에 피저우라는 도시가 있다. <삼국지>에서 여포가 조조와 마지막 결전을 벌이다 패해 최후를 맞게 되는 격전지 하비성이 이곳이다.

현대의 피저우는 외국에서 들여온 원목을 합판으로 가공하는 3000여개 기업에서 10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중국 최대의 합판가공 수출단지다. 2006년 이곳에서 노동자 대표와 합판기업 사장 대표가 마주앉아 첫 산별 단체협상을 시작했다. 단체협상은 6년 연속 계속됐고, 올해 5월에도 노동자 대표 15명과 합판협회 사장 대표 15명이 10만 노동자의 최저임금, 생산량별 성과급, 근속연수와 기술 등급별 임금, 보너스와 복지제도 등에 대해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이를 통해 이 지역 합판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은 해마다 20~30%씩 오르고 있다. 2006년 산별교섭이 시작될 당시 사장들은 임금만 많이 오르게 된다며 반대했다. 이제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협상으로 이직률이 부쩍 낮아지고 노동 효율이 높아지고 업체 간의 악성 경쟁이 사라져 기업 환경이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다며 반기고 있다.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이 지역 공회다. 흔히 공회는 중국 정부의 통제를 받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관제 노조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 공회는 앞장서서 산별 단체협상과 임금인상을 추진하면서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의 ‘중매쟁이’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최근 피저우의 산별교섭 상황을 돌아보고 온 이창휘 국제노동기구(ILO) 베이징사무소 선임자문위원은 피저우를 기점으로 중국 노동현장에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노조 조직률이 98%가 넘는 장쑤성에서 시작된 산별 단체협상이 저장·후베이·광둥성 등으로 확산되면서 중국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임금인상과 기업이윤의 재분배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임금조례를 제정해 전국적으로 단체협상을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과 위안화 저평가 등을 통해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전세계에 값싼 공산품을 무한정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이었다. 반면, 수출 경쟁력을 위해 중국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강요당했고, 이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내수 축소라는 아킬레스건을 만들어냈다. 이런 성장모델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중국 경제의 위기를 경고하는 비관적 신호는 많다. 고속성장을 이끌어온 두 축인 투자와 수출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거품과 금융 부실, 지방정부 부채, 수출 주문 급감, 심각한 과잉투자 문제 등 온통 빨간불이다.

하지만 중국이 작심하고 임금인상과 분배정책을 추진하면서 내수 중심 성장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청신호도 보이기 시작했다.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에 8.9%였지만 지금은 2.5%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년 동기 대비 중국의 소매 판매 증가율은 8월 17%, 9월 17.7%로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차기 중국 지도부 후보인 보시라이 충칭시 서기와 왕양 광둥성 서기는 분배가 먼저냐 성장이 먼저냐를 놓고 공개적으로 ‘케이크 논쟁’도 벌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량의 돈을 풀어 위기를 극복한 듯 보였던 중국은 ‘중국모델’을 자랑했지만, 수많은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피저우에서처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실험이 확산되고 성공한다면, 중국은 거품 걷힌 진정한 ‘중국모델’을 세계에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수출 중심 정책에 안주하며 비정규직과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중국이 어떤 교훈을 주게 될까.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