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13 19:42
수정 : 2011.10.1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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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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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반 논란에도
혁신 단체장들은
노인 무상의료 등
새 제도를 도입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었을 때 맑은 하늘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면 참 기분이 좋다. 그런 날이면 창문을 열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다. 몸이 가벼워진다. 서울에 견줘 한결 맑은 도쿄 공기는 내가 매우 부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도쿄 공기가 옛날에도 이렇게 맑았던 건 아니다. 도쿄도 무사시노시의 세이케이 중고등학교에는 기상관측소가 하나 있다. 이곳에선 남서쪽으로 85㎞ 떨어진 후지산을 매일 관측한다. 1965년에는 맨눈으로 후지산을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22일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들어 조금씩 늘기 시작해 지난해엔 116일이나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거의 사흘에 하루꼴로 도쿄에서도 맨눈으로 후지산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공은 1967년부터 12년간 도쿄 도정을 이끈 미노베 료키치 전 도쿄도지사에게 돌려야 한다. 경제학자였던 그는 당시 야당이던 사회당과 공산당의 합동추천으로 도지사 선거에 나서면서 “도쿄에 푸른 하늘을 되찾아 오겠다”는 공약을 맨 앞에 내세웠다. 그는 당선되자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해연구소를 설립하고, 시 조직에 ‘공해국’을 신설했으며, 자동차 배기가스 줄이기와 스모그 대책을 중앙정부보다 앞서 시행했다. 좋은 정책은 한번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 누가 함부로 되물리지 못하는 법이다. 일본에선 미노베 도지사가 도쿄도를 이끈 시기를 ‘혁신 지자체’의 시대라고들 한다. 고도성장기의 막바지에 있던 당시 일본의 최대 사회문제는 공해였다. 혁신 단체장들은 지역 주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미적지근한 중앙정부를 훨씬 앞질러 공해로부터 탈출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혁신 단체장은 도쿄에 앞서 교토와 요코하마에서 등장했고, 1971년에는 160곳이 혁신 지자체로 분류될 정도로 한 시대의 흐름을 이뤘다.
일본의 복지제도를 선도한 것도 혁신 지자체들이었다. 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혁신 단체장들은 곳곳에서 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고, 아동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복지 확대에 반대하던 자민당이 몇해 뒤인 1973년 환골탈태하여 ‘복지 원년’을 선언하게 된 배경에는 그런 역사가 있었다. 혁신 자치단체들이 먼저 시작한 복지제도는 이제 중앙정부에 의해 전국에 도입돼 있다. 일본의 혁신 지자체 운동은 비록 중앙정치를 개혁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지방정치 민주화의 토대를 단단히 다졌다.
1961년 군사쿠데타로 폐지됐다가 1995년에야 부활한 한국의 지방자치는 역사가 아주 짧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그동안 많았다. 선거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이기 일쑤였고, 행정은 쓸모없는 건축물과 도로 등을 양산하기 일쑤였다. 어차피 학습비용이라고 치더라도, 자치단체의 부채 증가는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1960년대 말 혁신 지자체 운동과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핵심엔 ‘복지’가 서 있다. 무상급식을 필두로, 중앙정부의 소극적인 복지정책에 대한 지방의 반란이 일기 시작했다. 사실 보편적인 무상급식은 외국에서도 그리 흔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아동수당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편적인 무상급식을 ‘취학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수당’ 혹은 ‘교육비 보조금’과 같게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보편적인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주민투표를 시도했다가 무산돼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후임을 뽑는 선거가 곧 치러진다. 무소속 후보가 야권을 대표해 여당 후보와 맞붙게 된 것을 보면, ‘혁신’에 대한 시민의 열망은 매우 강해 보인다. 이런 흐름을 살려 다음 지방선거에선 중앙정치에 반역하는 후보들이 쏟아져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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